그러나 중동 지역 일부 국가에서 두 영문 이름이 다르다며 특허 출원을 거부당했다. 해외에서 특허 출원 시 나라마다 등록된 이름이 다르면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식재산권 보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김씨는 외교부에 영문 이름을 바꿔달라며 신청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재판까지 하게 됐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김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 영문 성명 변경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사업상 이유로 여권의 영문 이름을 변경하는 것은 여권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행 여권법 시행령에는 △국외에서 여권의 로마자 성명과 다른 로마자 성명을 취업·유학 등 이유로 장기간 사용한 경우 △인도적 사유를 고려해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로마자 성명 교체가 가능하다고 돼 있다. 이미 해당 로마자 성명으로 외국에서 생활관계 또는 법률관계가 형성돼 있는 경우는 제한적으로 로마자 성명 표기 교체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를 두고 김씨 측은 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위와 같은 경우라고 주장했다. 김씨 측은 “(이미 특허를 출원한 이름과 여권 이름의) 표기가 달라 일부 국가에서 특허 출원을 하지 못하게 됐고, 이로 인해 사업을 영위하는 데 상당한 지장을 받고 있다”며 로마자 성명 교체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것만으로는 외국에서 생활관계 또는 법률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판단의 근거는 김씨의 해외 체류 기간이다. 재판부는 “김씨는 4년간 12일 정도만 해외에 나가 있어 생활관계 또는 법률관계를 형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로마자 성명을 쉽게 변경해준다면 한국 여권에 대한 대외 신뢰도가 저하될 수 있다”는 점도 주요 이유로 지적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해외에 머물지 않더라도 사업을 하고 있다면 그 나라에서 법률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해외 체류기간만으로 법률적 관계 형성을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재판부가 특허나 사업 등의 중요성을 너무 축소해서 판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해외에서 출원인 성명을 변경하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김씨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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