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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들을 사라지게 한 사진가. 그는 이제 사라지는 것들을 존재하게 한다. 사진가 김아타(사진)의 이야기다.
김아타는 2000년대 중반 ‘뉴욕의 신화’를 만든 작가다. 긴 시간의 노출로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도시를 찍은 사진들을 포개 예술계를 뒤흔들었다. 카메라의 셔터가 오랜 시간 열려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은 사라지고 풍경만 남았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사진으로 증명했다. 12개 도시에서 각각 1만 컷의 사진을 찍어 포개고 포갠 ‘인달라 시리즈’도 그랬다. 결국 남은 것은 잿빛이었다. 런던도, 파리도, 델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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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되어가던 그때, 그는 자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멈출 것인가 스스로 진화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했다. 그는 카메라를 버리고 캔버스를 들었다. 그리고 ‘자연하다(On Nature)’ 프로젝트로 돌아왔다. 미술계에선 ‘요즘 김아타 뭐 하는지 아냐’고 묻는 말이 많았다. 10여 년의 시간을 응축한 김아타가 ‘자연하다’의 첫 개인전을 연다. 500점의 작품 중 28점이 올해 30주년을 맞아 재개관한 경기 남양주 모란미술관에 걸렸다. 이달 19일 개막해 10월 10일까지 이어진다.
김아타의 ‘자연하다’를 본 고(故) 이어령 선생은 작고 전 “‘자연하다’는 우주에 널어놓은 빨래와 같다. 김아타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의 끝에 자연이 있었다. 먼 길을 돌아 자연으로 돌아왔다. 나(사진가 김아타)를 죽여야 내(예술가 김아타)가 사는 길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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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를 세운 곳은 강원 인제 원시림과 제주 유채꽃밭, 칠레 아타카마 사막, 중국 티베트 라싸, 미국 뉴멕시코 인디언보호구역,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 대사원,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등이다. 그 여정엔 찢기고 상처 입고, 사라진 작품도 많았다. 사계를 두 번 돌아 살아남은 작품들은 멋진 추상이 됐다. 세상에 하나뿐인, 누구도 다시는 복제할 수 없는.
유채꽃이 두 번 피고 질 동안 제주의 바람은 캔버스를 찢어놓았고, 사막의 모래바람은 캔버스에 모래 가루들을 박제했다. 베네치아에 홍수가 났을 땐 캔버스도 물에 잠겼다. 싯다르타가 붓다가 된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캔버스는 다른 어떤 장소의 것들보다 더 심하게 찢겨 있었다. 함께 땅을 파고 묻었던 주지 스님은 붓다를 대하듯 캔버스에 합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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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야만의 역사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은 본성과 본능의 향연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공격하고 방어한다. 인간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였던 것을 자연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김아타는 포 사격장에서 억지로 건져낸 캔버스 파편들을 짜깁기하고, 그 위에 색을 칠했다. 검정과 빨강. 그는 검정은 가장 화려하고 감각적이지만 가장 위험한 색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뺄 수 없는 가장 낮은 위치의 색이면서, 아무것도 더할 수 없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색. 빨강은 야만의 결과물로서 피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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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는 지금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다음 ‘자연하다’ 작업을 위해 논의 중이다. 끝없이 우주를 갈망했던 우주과학의 역사도 자연의 일부로 본 걸까. “우주에 빨래를 널어놓았다”는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그는 진짜 우주에 갈 채비를 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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