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3·9 대선이 끝난지 64일만에 보궐선거 후보로 복귀했다. 때이른 정치 현장 복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반면, 대선 존재감을 이어가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3일 한국경제신문이 13대 첫 직선제 대선 후 낙선자들의 재등판 시점을 분석한 결과 조기 등판이 차기 대선에서 득이 된 경우보다 독이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후 1년 내에 조기 등판 한 뒤 차기 대선에 당선된 사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김 전 대통령은 1987년 12월에 치러진 13대 대선에서 낙선 한 뒤 4개월만인 1988년 4월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서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1993년 14대 대선에서 당선이 되면서 조기 등판의 성공 사례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외에 대부분의 경우 차기 대선에서 패배하거나 후보로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삼김(三金)' 중 한 명인 고(故) 김종필 총리는 13대 대선 패배 후 13대 총선에서 충남 부여에 출마해 81.88%의 기록적인 득표율을 올리면서 당선됐다. 하지만 이후 대선에서 이름을 찾지 못했다. 대신 14대 대선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15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원조 '킹메이커'라는 타이틀을 가지게됐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조기 등판이 독이 된 케이스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패배 후 즉각 당으로 복귀해 총재를 맡으면서 수습에 들어갔으나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 이어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총재로 당으로 복귀한 뒤 고압적인 이미지가 강조되면서 차기 대선인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진보 진영의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민주평화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정 전 대표는 17대 대선에서 패배 후 4개월만인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다. 하지만 패배하면서 대선 후보로서 체면을 구겼다. 2009년 재보궐선거(전북 전주 덕진), 2016년 20대 총선(전북 전주병)에서 당선됐으나, 대선 후보로서의 위용은 많이 꺾였다는 평가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2017년 19대 대선에서 패배 후 즉각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초대 대표로 정치 전면에 나섰지만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대패하면서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을 당선된 후 당에 복귀했지만 지난 당내 대선 경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패배하면서 대선 후보로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조기 등판한 인물들과 달리 패배 후 일정 기간을 뒀다가 복귀한 경우는 성공 사례가 더 많은 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기 등판 실패와 자숙 뒤 성공을 동시에 경험했다. 김 전 대통령은 13대 대선 낙선 후 4개월만에 13대 총선에서 전국구 의원(비례대표)로 이르게 복귀했지만 14대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후 2년 7개월만에 복귀, 15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패배 후 일정 기간의 공백기를 가진게 득이 된 케이스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18대 대선에서 패배한 후 평의원으로 3년 넘게 잠행을 했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으면서 대선 후보 행보를 재개한 뒤 2017년 19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패배 후 즉각적인 복귀는 불복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선 같은 전국단위의 주목도 높은 선거의 경우 이 같은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에서는 대중들의 눈에 드는 것만큼이나 잘 잊혀지는 것도 중요하다"며 "계속 자신이 가진 이미지를 소비할 경우 쉽게 질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훈/맹진규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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