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경기 침체 우려에도 긴축을 할 정도로 인플레이션 상황이 심각한가요.”(윤석열 대통령)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비해야 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국내외 거시·금융 전문가들을 만나 글로벌 금융시장과 한국 경제의 현 상황 및 향후 리스크 요인을 점검했다.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환율과 주식시장까지 요동치자 민간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회의를 긴급 소집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금융과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무역수지 적자 전환과 실물경제 둔화도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탁 형태의 회의장 중앙에 자리 잡은 윤 대통령의 시계방향으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 박석길 JP모간 이코노미스트,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조동철 KDI 정책대학원 교수, 안동현 교수,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 센터장,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최상목 경제수석,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앉았다. 회의는 약 100분간 진행됐다.
최재영 원장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사회를 본 최 수석이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전문가들이 특히 인플레이션 상황에 대한 우려를 많이 제기했다”고 전했다.
안 교수는 여러 위기 요인을 거론하면서 “이런 때일수록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이 악화할 경우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안 교수는 지난해 Fed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진단할 당시에도 “수십 년간 지속돼온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다른 민간 전문가도 “디글로벌라이제이션(탈세계화)에 따른 공급망 교란과 신냉전 등으로 세계 경제의 틀이 구조적으로 바뀌는 흐름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석길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거시경제 상황은 비교적 견실하다”며 “인플레이션 상황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물가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임금 부문으로까지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외환시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다른 참석자는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길 경우 시장에 잘못된 위험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격의없이 얘기했다”며 “윤 대통령이 원고 없이 전문가들과 문답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이날 정리 발언을 통해 “참석자들의 경기 상황에 대한 평가에 대체로 동의하고 지혜롭게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가겠다”며 “당분간 우리 금융·외환시장의 높은 변동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어 섬세한 재정정책 운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며 “물가 불안심리가 확산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좌동욱/조미현/고재연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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