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임원은 “한번 높아진 고객사의 눈높이를 다시 낮추기 어렵지만, 성공적인 상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예비 IPO 기업과 주관사단이 분주해졌다. 지난 6일 SK쉴더스를 시작으로 원스토어(11일)와 태림페이퍼(11일)까지 ‘대어’의 연이은 상장 철회 탓이다. 갑작스러운 ‘혹한기’를 맞아 공모 전략 수정이나 상장 연기가 잇따를 전망이다.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해온 오아시스마켓과 CJ올리브영 등도 주관사단과 시장 상황을 공유하며 향후 일정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증시 변동성 확대에도 대다수 대형 IPO 공모 기업은 일정을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단계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평가를 받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그러다 SK쉴더스 등의 연이은 상장 철회로 공모 전략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뛰어난 수익을 안정적으로 내는 SK쉴더스의 경우 흥행까진 아니더라도 상장엔 문제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며 “1주일여 사이에 많은 게 변했다”고 말했다.
11번가와 LG CNS 등 주관사를 물색 중인 고객사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증권사의 고민도 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무조건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해선 선택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업이 내부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기업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제시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실패 위험을 줄인 상장 전략을 제시하는 곳에 가산점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주말 2604.24로 마감해 4월 이후로만 5.9% 떨어졌다. 2021년 7월 최고점(3305.21)과 비교하면 26.9% 급락했다. 한 증권사 IB본부장은 “주가가 빠르게 내린 뒤로는 기관이 공모가액을 ‘무조건 비싸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라며 “고평가 논란의 대상이던 많은 기업의 상장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상장 전 PEF 등으로부터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이력도 공모가액 조정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IB본부장은 “최근 수년간 PEF에 유동성이 몰리면서 상장 전 장외 주식 가치가 크게 올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해당 가치가 현재 공모주 투자자의 희망 가격과 상당한 간극을 보이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1~3월 상장을 완료한 20개 신규 상장 기업(기업인수목적회사 제외) 기준 일반청약 경쟁률은 단순 평균 1089 대 1로 작년까지 3개년 평균 881 대 1을 웃돌았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따상’(공모가의 두 배에 시초가를 형성한 뒤 상한가로 직행) 기록도 세 건이 나왔다. 가장 가깝게는 지난달 28일 초고화질 콘텐츠 제작업체인 포바이포가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60% 오른 채 마감하며 사그라들지 않은 공모주 투자 열기를 보여줬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2020년 SK바이오팜의 상장처럼 기대 이상으로 흥행하는 공모주가 또 나와 분위기를 바꿔놓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작년 국내 IPO 시장은 팬데믹 이후 주가 급등에 힘입어 사상 최대인 약 20조400억원어치 주식을 소화했다.
최석철/이태호 기자 dolsoi@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