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법 체계를 심각하게 왜곡한다. 강력히 반대한다”
“변리사 특허침해 소송대리는 글로벌 스탠다드다.”</i>
국회에서 논의 중인 변리사법 개정안을 두고 법조계와 변리사 업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특허권·상표권 등에 대한 침해소송에서 변리사의 공동소송대리권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변호사들이 반대 주장과 해외 주요 국가에서 변리사의 특허침해 소송 대리가 이미 자리 잡고 있다는 주장이 맞붙는 형국입니다. 변호사와 변리사 간의 직역 갈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법조계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도화선
도화선은 지난 12일 불붙었습니다. 이날 국회 산자위가 전체 회의를 열고 변리사법 개정안을 의결함에 따라 공이 법사위로 넘어왔습니다.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변호사 단체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19일 성명서를 내고 “대한변호사협회·법원·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한국법학원 등 법조계 구성원은 모두 해당 법안이 국민의 권익과 밀접하게 관련된 민사사법 체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변협은 특허청 통계를 내세우며 “변리사들이 자신들의 고유 업무인 ‘특허출원’에서조차 매우 낮은 업무 신뢰도를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변리사가 출원한 특허의 42.6%(무효심판 인용률)가 무효로 판정되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업무수행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변협은 “훨씬 복잡하고 법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민사소송에서 소송대리인까지 맡는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허청 공무원들에게 또 하나의 노후대책을 선사하는 꼴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현재 특허청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7급 공무원은 변리사 1차 시험을 면제받고, 5급 이상 공무원으로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1차 시험 전 과목과 2차 시험 일부 과목을 면제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변리사 자격증 취득에 대한 혜택을 두고 불공정과 특혜 논란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글로벌 스탠다드?
변리사회 역시 강하게 변리사법 개정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는 지난 18일 논평을 통해 “일부 변호사단체가 발목 잡기식 반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변리사회는 “변호사단체가 국회 상임위 의결과정에서 논의된 해외 사례에 대해 ‘왜곡된 허위 주장’이라고 깎아내리고 있다”며 “실제 일본, 영국, 유럽연합, 중국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대리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변협은 이어 “국회 산자위는 법안 논의 과정에서 주요 선진국에서도 변리사가 소송대리를 한다는 변리사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이는 외국 입법사례를 아전인수격으로 왜곡한 허위주장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해외의 사례를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체계적인 법률교육을 받지 않고 변호사시험을 거치지 않은 비전문가에게 소송대리권을 허용하는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변협은 이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변협은 “미국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BAR)에 합격해 변호사로서 등록한 사람 중 이공계 학위를 가진 변호사가 추가로 특허 관련 법리에 대한 시험을 거쳐서 비로소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만 특허관련 소송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변협은 “위 과정을 거치지 않은 변리사(Patent Agent)는 소송수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한국 변리사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지도 않았고, 변호사시험(BAR)에 합격하지도 않은 (미국의) Patent Agent에 해당할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한국에 비해 변리사 등록 시 요구하는 과학기술 지식과 일반 법률 지식, 교육 기간이 월등히 많음에도 변리사에게 특허 등 침해소송에서 소송대리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며 “단지 독일 변리사법 제4조 제1항에 따라 불복 절차에서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만 구두로 의견을 진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국은 ‘Legal Service Act 2007’을 통해 2010년 1월 1일부터 아예 변리사 제도를 폐지하고 특허변호사와 상표변호사 제도를 신설하는 사법개혁을 단행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특허와 상표에 관한 모든 업무를 변리사가 아닌 변호사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변협은 “이들은 로스쿨 교육 등을 받고 특허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변협은 일본 사례를 들며 “오직 일본만 2002년 변리사법을 개정해 침해소송에서의 공동소송대리권을 일부 인정하는 ‘부기변리사’제도를 도입했다”며 “부기변리사로서 특허 등 침해소송에서 공동소송대리권을 갖기 위해서는 소송절차와 윤리 교육이 포함된 ‘특허침해소송’ 연수받고 논문형 업무대리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제도적 실패 현상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변리사회는 이 주장에 대해서 재반박했습니다. 변리사회는 “일본의 부기변리사 공동대리 비율은 2014년 37.5%에서 점차 증가해 2019년에는 47.3%, 지난해에는 55.8%까지 높아졌다”며 “영국의 경우도 (변호사회의 주장과 달리) 영국변리사회 주관의 3단계 소송인가증을 획득한 변리사는 지식재산기업법원은 물론 항소법원의 대리도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사소송법 체계를 무너뜨린다?
변협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변리사법 개정안이 민사소송법 체계를 무너뜨리는 법안이라는 것입니다.
변협은 “체계적인 법률교육을 받지 않고 변호사시험을 거치지 않은 비전문가에게 소송대리권을 허용하는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며 “지난 11일 법원행정처도 변리사법 개정안의 법체계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사실상 위 법안에 반대하는 ‘신중 검토’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특허·상표·디자인 등의 분쟁 시 침해 여부 판단은 사실상 변리사 등이 대리하는 특허심판원에서 하고, 민사소송은 이 결과를 기초로 후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관행”이라며 “특허심판원 무효심판 절차 등에서 독자적 대리권을 행사하고 있는 변리사가 민사소송 절차에서도 소송대리권을 행사할 아무런 실익이 없으며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경제적 비용부담만 가중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변협은 특히 “소송대리는 소의 제기부터 증거 제출과 증인신문 등 변론, 항소에 이르기까지 소송 전반에 걸친 모든 포괄적 권한 대리”라며 “체계적인 법률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변호사시험을 거치지 않은 비전문가에게 이같이 포괄적인 소송대리권을 부여하는 것은 로스쿨제도 도입의 취지와 민사소송법 체계에 반하며, 실무적으로도 많은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변리사회는 “소송대리권이 이미 규정된 변리사법에 따라 민사소송법 제87조의 변호사 대리원칙에 대한 예외 규정에 해당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또한 “변리사 공동소송대리는 대형로펌에 특허침해소송을 맡길 여력이 없는 중소·벤처기업의 오랜 염원”이라고 맞섰습니다.
변리사법 개정안을 둘러싼 변호사와 변리사 간 갈등은 앞으로 더욱 격화될 수 있습니다. 현재 법사위로 넘어온 법안에 전체 회의를 통과한 뒤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는다면, 앞서 변협이 밝힌 우려가 현실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에선 이번 개정안의 향방이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세무사와 노무사, 공인중개사 등도 각각의 분야에서 공동소송대리권을 허용하라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현재도 ‘공급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변호사들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 수 있습니다. 법사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봐야 할 이유입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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