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 참석한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석좌교수(사진)는 ‘경제질서를 바꾸는 기술혁신’ 세션 기조연설에서 “세계 경제가 기술 혁신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선임정책고문을 지낸 세계적인 통화·금융 시스템 전문가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기술 혁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기술 혁신이 단기간에 생산성을 좌우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증기기관, 내연기관, 컴퓨터 등 과거의 초대형 기술 혁신이 실제 생산성을 높이기까진 적어도 10~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내연기관이 빛을 발한 것도 각국이 20여 년에 걸쳐 고속도로망을 구축한 이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술 자체만큼 어떻게 이 시간을 줄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한국은 오랜 기간 인적 자본과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며 혁신 인프라를 갖춰왔다”며 “혁신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데 유리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또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낮은 경쟁력이 그간 한국 경제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었지만 최근의 혁신 기술이 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경제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나뉘는 상황은 한국에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결국 한국은 국방과 관련된 이유로 미국 진영에 설 수 밖에 없을텐데, 그런 상황이 경제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혁신에 대한 아이컨그린 교수의 시각이 지나치게 회의적이란 지적도 나왔다.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는 “새로운 기술만으로 혁신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소비자들의 편익으로 이어지게 할지가 중요하다”며 “아이컨그린 교수가 얘기한 생산성 정체 기간을 줄이는 게 기업가들이 해온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경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도 “선진국에 비해 부존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한국은 기술 혁신을 중심으로 국가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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