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주식 공매도 거래 시 개인과 기관투자가·외국인 사이 차별을 없애자는 여당 법안에 대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기관·외국인의 공매도 거래 조건을 개인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매도 형평성 제고’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공매도 관련 법안에 대해 “기관에 개인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상호 합의로 대차 조건을 정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반한다”며 “기관 간 대차를 불합리하게 제약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했다.
앞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안은 빌려온 주식을 미리 판 뒤 나중에 반환하는 차입 공매도 시 최소담보비율과 상환기간을 각각 140%와 90일로 법에 못 박도록 했다.
그동안 개인들은 공매도를 기관·외국인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규정하고 개선을 요구해왔다. 특히 개인과 기관·외국인 간 거래 조건이 다르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공매도를 위한 주식을 빌릴 때 개인은 대주시장, 기관과 외국인은 대차시장을 이용한다. 2020년 기준 67조원 규모인 기관 간 대차시장에는 국제표준약관에 따라 105% 수준의 최저담보비율이 적용된다. 상환기간이나 만기는 당사자 간 협의에 의해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한 구조다.
반면 개인들은 다른 개인이 신용융자를 위해 담보로 내놓은 주식들로 조성된 대주시장(2020년 기준 230억원 규모)을 통해서만 주식을 빌릴 수 있다. 최저담보비율은 140%인데 상환기간은 최대 90일로 묶였다.
이 의원은 이처럼 투자자별로 다른 공매도 담보비율과 상환기간을 자본시장법에 명문화해 투자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기관은 예탁결제원·증권금융 내규, 개인은 금융위 고시에 따라 각기 다른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투자자 간 형평성 강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이에 부응하는 법안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도 현재 140%인 개인 공매도 최저담보비율을 낮춰 기관·외국인과 형평성을 도모하는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금융위는 투자자 간 형평성을 맞추겠다고 기관·외국인의 공매도 거래조건을 개인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에는 난색을 표했다. 금융위는 “대차시장에서 기관 간 담보비율 105%는 기관의 일반적인 신용위험이 반영된 것”이라며 “만기 역시 기관 간 대차라고 무제한이 아니고 대여자의 반환요청이 있으면 즉시 반환해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용준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대차시장과 대주시장이 구분돼 형성된 것은 기관과 개인 간 신용도 및 담보능력, 거래규모 등 차이에 따른 것”이라며 “상환기간과 담보비율을 동일하게 제한하는 것만으로 기관과 개인 간 형평성이 제고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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