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면피성 서류'만 잔뜩 늘린 중대재해처벌법

입력 2022-05-23 17:06   수정 2022-05-2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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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효과는 없고 전에 없던 서류 작업만 잔뜩 생겼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이 지났지만 실효성을 두고 건설 현장에선 여전히 의구심이 가득하다. 건설업은 중대재해에 가장 취약한 산업 중 하나다. 연간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이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 현장에선 총 417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산업 재해로 발생한 전체 사망자(828명)의 절반을 웃돈다.

그런데도 중대재해법 시행에 대한 건설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 건설사 현장관리 담당자는 “경영자 처벌이 초점이다 보니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수시로 현장 사진을 찍어 두고 사전 조치를 다했다는 증빙서류 만들기 바쁘다”며 “지난해에 비해 안전 관련 서류 작업만 두 배 정도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중대재해법이 실제 안전사고를 줄이는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올 1분기 건설 현장에서 총 55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중대재해법 첫 적용 사례 오명을 피하기 위해 일부 공사 현장은 1분기에 일시 문을 닫기도 했지만 지난해 1분기(49명)보다 오히려 사망자가 늘었다.

전문가들은 현장 사고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입법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국내 건설 현장은 징벌적 처분만으로 막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건설업 사망자의 100%는 건설 기능인(일용직 근로자)이다. 사망자 10명 중 8~9명의 근속 기간은 6개월 미만이다. 게다가 일용직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업계에선 책임 건설 기능인 제도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각 건설 현장에 공종별 책임 기능인을 정하고, 이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그룹 내 작업자의 부주의나 미숙련 근로자 문제를 해소하자는 취지다. 현재 기술자들이 맡고 있는 현장 대리인을 책임 기능인이 보좌하는 구조를 형성하면 안전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다.

현장의 속성을 간과한 채 경영자만 옥죄는 중대재해법으론 현장 사고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어렵다. 경영자 처벌이라는 손쉬운 접근으로 현장을 위축시키기보단 근로자가 동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예방 시스템 마련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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