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논의만 14년째…'납품단가 연동제'가 뭐길래 [양길성의 여의도줌인]

입력 2022-05-24 06:00   수정 2022-05-24 06:41


서로를 향한 비판이 들끓는 국회에서도 여야가 한목소리로 입법을 추진하는 법안이 있습니다. ‘납품단가 연동제’입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중소기업중앙회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달 내로 하도급법 개정안 성안을 완료하겠다”고 했습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과 하도급 거래 공정화법 처리를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뭐길래?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의무’ 반영하는 제도입니다. 주로 원청사(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하도급사(중소기업) 사이에서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왔습니다. 제품 제조에 쓰이는 원자재 가격은 올랐는데 납품 단가가 그대로면 수익이 그만큼 줄기 때문이죠. 입법 논의는 2008년부터 있었지만 번번히 좌초됐습니다. ‘국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어떤 법안이 발의됐나
최근 들어 그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여야할 것 없이 납품단가 연동제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있습니다. 김경만 민주당 의원 등 19명은 지난해 11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상생협력법 개정안)과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원자재 기준가격을 정한 뒤 기준가격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비율 이상 오르면 추가 비용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를 어기면 1억원 이하 과태료 부과하는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지난달 한무경 국민의힘(사진) 등 10명이 발의한 상생협력법 개정안에는 ‘원자재 가격이 10%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하거나 최저임금이 상승 또는 하락할 때 변동된 금액에 관한 분담을 원청사와 하도급사 간 약정서에 담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밖에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에선 이학영, 김경만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도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국정과제에 넣었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중소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하반기 중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범운영하고 이를 토대로 시장과 기업의 수용성이 높은 연동제 도입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중소기업계는 ‘환영’…”조정협의제도 유명무실”
납품단가 연동제의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탄 계기는 여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원자재 가격이 최근 1~2년 새 지나치게 많이 올랐습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 공급망이 불안해진 탓입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골조공사에 쓰이는 고장력철근(SD400)은 올해 1월 t당 105만원에 거래됐습니다. 작년 1월 67만원에서 7월 한때 128만원까지 치솟은 뒤 지금은 100만원을 웃돌고 있습니다. 주요 건설자재인 시멘트 가격은 지난해 7월 t당 7만8800원에서 올 1월 초 9만3000원대로 상승했습니다. 건물 기둥이나 보로 쓰이는 형강(HD형강)의 t당 가격은 지난해 1월 78만원에서 6개월 만에 12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중소기업계는 “원자잿값은 크게 올랐는데 그 인상분이 납품 단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원자재 가격변동 및 수급 불안정 관련 중소기업 실태조사 조사 보고서(2021)’를 보면, 납품단가에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전부 반영된 경우는 13.8%에 그쳤습니다.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는 40.3%에 달했습니다.

중기중앙회가 지난 3월 중소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중소기업 75.2%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 여건이 매우 악화됐다’고 답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주로 하도급을 받아 골조 공사를 하는 철근·콘크리트 업체들은 원청사(시공사)를 상대로 “공사 계약금을 올려달라”며 ‘셧다운(공사중단)’ 등 단체 행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원청사와 하도급사가 자율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하는 ‘납품대금 조정협의 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게 중소기업계 지적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철강 목재류 등을 주원료로 제품을 만들어 원청사에 납품하는 401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해 본 적 있는 사업자는 39.7%에 불과했습니다. 조정 신청 뒤 위탁기업이 협의를 개시했다고 답한 비중은 51.2%에 그쳤습니다. 조정 신청이 들어와도 원청사의 절반 정도는 협의 자체를 거부했다는 뜻입니다.


중소기업계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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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측 ”국가가 인위적 시장가격 통제하나”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행하는 ‘취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합니다. 하도급사의 잘못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원자재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죠.

다만 납품단가 조정에 관한 사안을 ‘법’으로 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게 반대 측 주장입니다. 어떤 업종과 원자재를 납품단가 연동제 대상에 넣을지, 연동되는 인상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등을 법으로 일일이 정하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시장경제 원리를 해칠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국가가 법을 통해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시장 왜곡이 발생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원자잿값 등이 변동될 때 의무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제화하는 것은 과도한 것 같다”며 "수많은 업종과 원재료 중 어떤 업종과 원재료에 연동제를 적용할 지 시행령으로 일일이 정하다 보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표준 하도급계약서를 만든 기업에 대해 혜택을 주는 것처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하도급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송상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국장도 "시장경제 운영에 있어 가격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이나 법률 제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짙다"며 연동제 도입을 반대했습니다. 그는 "납품단가 조정신고센터를 운영해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며 "법 개정은 최소화하고 우선 거래 관행을 바꾸고 계약 관련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방향은?
국민의힘은 이달 내 하도급법 개정을 새로 마련해 기존 발의된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과 함께 여야 합의안을 만들 계획입니다. 도입 자체에 이견이 크지 않아 법안 통과는 예정된 수순으로 보입니다.

다만 연동제를 적용할 업종과 원자재 범위 등을 세부 논의를 거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어길시 처벌할지 아니면 연동제 도입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할지도 논쟁이 예상됩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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