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 효과’라는 말이 있다.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는 미국 국민이 즐겨 입는 기성 브랜드의 옷을 멋지게 소화하며 패션산업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제44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선 공화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의미로 보라색 드레스를 입었다. 옷을 TPO(시간·장소·상황)에 맞게 잘 활용하면서 개념 있는 패션의 선두 주자로 각인됐다.
퍼스트레이디가 입는 패션과 스타일은 일종의 메시지다.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자신의 철학을 담아내기도 한다. 재클린 케네디가 그랬고, 힐러리 클린턴도 그랬다. 당대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표현한 ‘패션의 아이콘’이었다.
영부인은 옷을 통해 짧은 순간 많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김건희 여사의 패션 스타일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이유다. 김 여사는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옷만 네 차례 갈아입어 주목을 받았다.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 때 입은 흰색 드레스는 절제와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 정치적인 발언을 자제하고 대통령을 조용히 내조하겠다는 의미다. 김 여사 측은 “흰색은 어떤 색과도 조화되면서 드러내지 않는 절제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의 패션은 40~50대 여성들에게도 화젯거리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그가 입은 옷과 제품들을 사재기할 정도다. 자택에서 가볍게 입는 ‘집콕 패션’과 나들이옷도 관심을 받는다. 지난 3월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할 때는 검은색 A라인 핀턱치마가 관심을 끌기도 했다. 푸른색 재킷과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검은색 치마를 매치해 멋을 냈다. 이 A라인 핀턱치마는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5만4000원에 판매되는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금세 동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 여사의 패션 스타일은 서민 친화라는 일관된 의미가 담겨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고가의 의류를 피하고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의상을 구매해 전임자와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영부인에 막대한 관심이 쏠리는 만큼 그들의 패션이 구설에 오르내리는 일도 적지 않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인 질 바이든은 망사스타킹에 미니스커트를 입어 ‘파격 패션’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공식 석상에서 한 벌에 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재킷을 입고 등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영부인의 패션 스타일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좌우된다. 내조 스타일의 영부인은 심플하고 수수한 옷을 선택하는 게 보통이지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참여형 영부인은 과감한 패턴에 선명한 색상의 옷을 선택한다.
흑인과 여성, 아동 인권에 목소리를 냈던 미셸 오바마는 맨살이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리스크 테이커’형의 영부인이다. 미국 디자이너인 랄프 로렌과 제이슨 우가 제작해 화려하고 톡톡 튀는 드레스를 선호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정갈한 슈트를 즐겨 입었다. 밝은 색상의 재킷과 정장 바지 스타일은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됐다.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를 빼놓고는 영부인 패션을 얘기할 순 없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샤넬 재킷과 납작한 모양의 ‘필박스 모자’는 그를 당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색상의 옷을 입어 존중을 표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역대 영부인은 대부분 대통령 곁을 조용히 지키는 조력자 역할을 해 왔다.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까지 역대 영부인은 양장을 입을 때도 클래식한 슈트를 즐겨 입었다. 슈트의 절제된 스타일을 통해 단정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여성스럽고 우아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김건희 여사는 여성적인 면을 최소화하면서 차분하고 세련된 옷을 주로 선택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치마나 한복을 입으면 여성적인 느낌을 주지만, 전문적인 느낌은 떨어진다”며 “어머니보다는 ‘비즈니스 우먼’이라는 바뀐 시대상을 반영한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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