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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10여년이 지난 최근 이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 낸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연구자는 이승훈 숭실대 경영학 박사인데요.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인터넷·게임 담당 연구원이기도 합니다. 이 박사가 쓴 논문 '국내 애널리스트의 커버리지와 상장사 연구개발(R&D) 활동의 관계 검증'은 올 3월 한국재무관리학회 간행물에 실리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식시장에선 애널리스트 커버리지가 기업 혁신을 가로막기보다는 오히려 R&D 활동을 촉진시킨다는 게 논문의 요지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어떤 차이가 있길래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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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는 이처럼 은근한 저력을 갖고있는 애널리스트의 보고서가 국내 상장사의 기술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조사를 위해 2003년부터 2012년까지의 '애널리스트 커버리지 데이터'(에프앤가이드)와 '국내 특허 데이터'(키프리스)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애널리스트의 영향력'을 커버 기업과 관련해 보고서를 발간한 빈도수로 규정했습니다. 커버리지 기업으로는 코스피200을 이루는 기업 200곳 가운데 지주사나 금융사 등을 제외하고 76곳을 선별했습니다.
연구 결과 이 박사는 미국과 한국의 상반된 실증연구는 '서로 다른 경제·자본시장 구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는 "미국 현지 애널리스트들의 커버리지는 상장사 경영진이 단기 실적을 중시하게끔 만드는 경향이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영향력이 커서 업계가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이유로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기술혁신을 둔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한적인 인수합병(M&A) 환경도 이 박사의 결론에 힘을 싣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비해 M&A 시장 규모가 작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0~2015년의 기간 동안 한국의 평균 M&A 시장 규모는 GDP 대비 3.4% 수준입니다. 2015년 한 해만 보면 시장 규모는 7.1% 수준까지 올라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미국(10.2%)과 비교하면 여전히 작다는 겁니다. 적대적 M&A는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적대적인 M&A 사례가 없다는 것은, 대규모 투자로 재무구조가 취약해졌을 때 피인수 대상이 되는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웬만해선 애널리스트 보고서에서 투자의견 '매도'를 보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박사는 "국내 상장사의 단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애널리스트가 곧바로 투자의견을 중립이나 매도로 전환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오히려 기업이 혁신을 위한 투자로 부진한 단기 실적을 맞을 경우 애널리스트는 매수를 유지하고 미래 가치를 강조해 기업의 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애널리스트 영향력이 상장사 경영진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 봤습니다. 논문을 작성한 이 박사는 연구 결과를 종목 선정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박사는 기자와 통화에서 "애널리스트는 통상 리포트를 통해 6개월, 1년 뒤를 내다봐야 하지 않느냐"며 "커버리지를 개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의 미래 방향성과 업권 전망을 낙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애널리스트가 다루는 종목일수록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할 수 있고 혁신활동에 의지가 있는 기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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