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는 대법원 판결 당일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다가 산업 현장의 극심한 혼란을 우려하는 보도가 쏟아지자 하루 뒤인 어제 보도 참고자료를 뿌렸다. “다른 기업에서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효력은 판단 기준 충족 여부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내용으로 이틀 전 대법원 설명과 같았다.
고용부의 이런 상황 판단과 현실 인식은 참으로 느긋하고 낙관적이다. 산업 현장의 혼선이나 기업들이 느끼는 불안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임금피크제 무효화 투쟁을 선언했고 기업들이 줄소송에 휘말릴 판인데, 대법원 판결 의미를 축소 해석하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는 속내를 이해하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고용부가 근로시간 유연화 등 새 정부 국정과제 이행과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계를 자극하지 말자는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국노총 출신인 이정식 장관을 수장으로 맞은 고용부가 노동계의 눈치를 봤다면 더욱 큰 문제다.
고용부는 지금이라도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혼란이 기업의 임금 부담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가 효력을 갖는 조건으로 제시한 임금 삭감 폭과 기간, 업무량 감축 수준 등은 노사 간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만큼 고용부의 적극적인 유권해석이 필요하다. 임금피크제 실태 조사를 벌이고 법률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컨설팅도 해줘야 한다.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도 서둘러야 한다. ‘정년 60세 이상’과 ‘임금체계 개편’을 의무화했지만, 노동계 반발로 임금피크제를 명시하지 못했다. 법 조문(19조 2)과 고령자 차별 금지의 예외로 보는 조항(4조 5)에 임금피크제를 못박으면 분란을 피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가 무력화되면 고용 불안은 물론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추가 정년 연장 논의도 막히게 돼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과 파장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민감한 문제에 손을 놓고 노사가 알아서 하라고 한다면 무책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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