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大이직 시대'…일손 달리는 기업들 "휴가 무제한, 집도 드려요"

입력 2022-05-27 17:20   수정 2022-06-07 16:10

미국 코네티컷주 스탬퍼드에 사는 지나 마리노(25·여)는 작년 한 해 직장을 두 번 바꿨다. 지난해 7월 원래 다니던 곳보다 규모가 큰 마케팅회사로 이직했다. 하지만 담당 업종이 마음에 안 들어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실직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프로필을 구직 사이트에 올리자 곧바로 한 헤어케어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하루도 안 돼 같이 일하고 싶다는 전화가 와서 놀랐다”며 “연봉 등 조건도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자 미국에서는 ‘대퇴사(Great Resignation)’로 불릴 만큼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지금은 ‘대이직(Great Upgrade)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의 구인 노력과 이직을 쉽게 생각하는 MZ세대(1980~1995년생) 가치관이 맞물린 결과다.

○이직 위한 퇴사 늘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많은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냈다. 재택·원격근무에 익숙해지자 굳이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일을 선호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부가 축적된 것도 컸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의 퇴사 건수는 매달 400만 건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노동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며 “대퇴사 시대가 왔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가 꺾이고 경제활동이 재개되자 기업들은 일할 사람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3월 기준으로 기업들의 신규 구인 수요는 1154만 명이었지만 실제 고용은 673만 명에 불과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에서는 지금 구직자 1명당 2개의 일자리가 마련돼 있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노동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자발적 퇴사 인원의 91%가 이직을 이유로 내세웠다고 분석했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사표를 낸다는 얘기다. 이직이 늘면서 근속연수도 크게 짧아졌다. 미국 싱크탱크 EBRI의 연구에 따르면 과거 35년간 미국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5년가량이었지만, 지난해 이후엔 1.8년으로 급감했다.

높은 임금, 워라밸 보장 등 더 나은 근로 조건을 제시받으면 언제든 이직할 수 있다는 게 MZ세대다. 딜로이트가 이달 초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64%가 ‘1년 안에 직장을 바꿀 것’이라고 응답했다. 미국 급여정보처리업체 ADP의 넬라 리처드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서 직업은 하나의 상품이 돼 버렸다”며 “만약 당신이 지금 업무가 마음에 안 든다면 언제든 더 나은 직장으로 골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라트 라마무르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은 최근 “미국은 대퇴사가 아니라 대이직 시대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
○빅테크·전통기업 모두 구인 경쟁
기업들은 채용을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는 물론이고 맥도날드 등 전통 기업까지 앞다퉈 직원들의 임금을 올리고 있다. 유연·재택근무제를 도입하는 곳도 많다.

직원 복지를 위해 무료 점심 서비스, 주유쿠폰 제공, 팝가수 초빙 콘서트 개최 등까지 이뤄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임원급 직원들에게 ‘무제한 유연휴가제’라는 보상책을 내놨다. 언제든 원하는 만큼 쉬라는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근로 환경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월가에서까지 고용 유지를 위해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육가공 기업 JBS, 월트디즈니 등은 직원들에게 전용 주택을 주기 위해 부지를 사들이고 있다.

포브스는 “일손이 달리는 기업들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을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임금 등 직접적인 보상 외에 업무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직원 경험’은 온라인상에서 금방 입소문을 탄다. MZ세대 직원들이 대부분 SNS를 쓰고 있어서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에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 노동시장이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적 우려가 커진 넷플릭스, 트위터 등은 이미 인력을 줄이고 있다. 더타임스는 “경기가 나빠지면 사람들도 직장을 관두는 것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리안/오현우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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