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가 급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추경이 여야 합의로 마무리돼 바로 지급을 시작하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극단적 대결과 일방적 폭주로 점철됐던 지난 정부 때와 달리 국회가 협치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2020년 총선, 작년 재·보선, 올해 대선 때처럼 ‘선거 전 대규모 퍼주기’라는 악습이 되풀이됐다는 점에서 뒷맛은 여전히 씁쓸하다.
더구나 이번에는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역대 최대 규모 추경이 풀린다는 점에서 ‘매표용 짬짜미’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많아도 10조원 선이던 지원액이 대선을 거치며 말도 안 되는 규모인 50조원으로 급증하더니 결국 그렇게 관철된 결과는 심히 유감이다. 자영업자 지원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연초 1차 추경으로 17조원을 풀고 불과 한두 달 만에 그 3배가 넘는 2차 추경을 푸는 것은 여러 면에서 과도하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여의도 포퓰리즘에 새 정부마저 오염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골머리를 앓는 와중의 대규모 추경은 한국 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62조원을 한꺼번에 푸는 것은 가뜩이나 고공비행 중인 물가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금리 인상을 부채질해 중장기적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고물가 상황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지원을 늘리며 소비를 강제하는 것도 방향착오다. 15년 만에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고 향후에도 연속 인상이 유력한 한국은행의 행보와 심각한 엇박자다.
재정 부담이 커지는 점도 걱정스럽다. 추경 확대를 위해 여야가 예정된 국채 상환액을 9조원에서 7조5000억원으로 1조5000억원 줄이기로 한 대목은 전형적인 조삼모사다. 추경 핵심 재원인 53조3000억원의 초과세수가 제대로 걷힐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국은행마저 올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한 마당에 기획재정부의 초과세수 추계가 너무 낙관적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초과세수가 부족하면 결국 국채 발행으로 보전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 글로벌 통화긴축 확산 등도 세수 확보에 장애다. 나라 살림살이를 외면한 채 생색만 내는 삼류정치를 언제까지 이어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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