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가 대체 왜?"…'24년 왕국'이 흔들린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2-06-02 08:00   수정 2022-06-03 14:00

5월 31일 아침, 코스트코코리아의 홈페이지에 ‘얼리 모닝 딜리버리(새벽 배송)’ 공지가 떴다. 매일 오후 5시까지 주문 완료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배송해준다는 내용이다. 회원이어야 하고, ‘5만원 이상 구매 시 주문 가능’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코스트코의 새벽 배송 참전은 단숨에 유통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대체 왜?’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한 대형마트 임원조차 “배경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코스트코는 1998년 한국법인을 만든 이래, 오프라인 유통에만 전력해왔다.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라는 구호를 금과옥조 삼아 창고형 할인점의 제왕으로 오랫동안 군림하고 있다. 새벽 배송 참전이라는 코스트코코리아의 ‘변심’은 세계 어느 곳보다 치열한 한국의 치열한 e커머스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코스트코코리아의 ‘24년 왕국’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코스트코의 ‘완벽한 복제판’으로 불리는 신세계그룹의 트레이더스가 앞장서고, 코스트코코리아의 가격 경쟁력을 집요하게 공격 중인 쿠팡까지 가세하면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아성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보폭 넓히는 코스트코
코스트코코리아는 ‘코로나 특수’를 계기로 온라인에 조금씩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공식 온라인몰을 열었다. 새벽 배송은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코스트코(코스트코홀세일)도 온라인으로 영토를 확장 중이다. 올해 처음으로 텍사스에서 우버와 연합해 식료품 당일 배송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직접 ‘픽업’할 수 있도록 설계한 매장도 미국 전역에 112개(1분기 말 기준)에 달한다. 코스트코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리차드 갈란티는 최근 기관투자가 설명회에서 이 같은 매장을 올해 두 배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코스트코 넥스트’라는 독특한 온라인 서비스도 확대 중이다. 코스트코 공급사 중 엄선한 소수의 브랜드를 골라 회원들이 20% 할인된 가격에 해당 브랜드 웹사이트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덕분에 코스트코의 올 1분기 순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7% 증가한 494억달러를 기록했다. 디지털 매출도 1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코스트코 전체 매출에서 이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8~9%에 불과하다.

코스트코코리아의 새벽 배송 개시는 코스트코가 진출해 있는 13개국(미국, 캐나다, 멕시코, 영국,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 프랑스,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중국) 중에서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온라인 주문에 특화된 풀필먼트센터의 전 단계를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물류 업계 관계자는 “코스트코와 새벽 배송 제휴사는 CJ대한통운”이라며 “저녁 5시 전에 주문을 마감하면 점포 폐점 전에 해당 상품을 출고함으로써 새벽 배송을 가능케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전용 풀필먼트센터를 운영하는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은 밤 11시 59분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

코스트코는 대용량 포장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상품 구색 특성상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 주문에 대응하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이마트 등 일반 대형 할인점은 품목 수가 코스트코의 10배 이상인 데다 소포장 제품이 많아 매장에서 온라인 주문을 처리하려면 별도로 ‘피킹&패킹(picking&packing)’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에 비해 코스트코는 주로 팔레트 단위로 박스째 물건을 진열하기 때문에 택배 차량으로 주문 물품을 새벽에 배송하기 쉽다”고 말했다.
새벽배송은 매출 규모 유지 위한 불가피한 선택?
코스트코코리아의 새벽 배송 ‘실험’에 대한 다른 해석도 나온다. 약 2년간의 ‘코로나 특수’ 이후의 상황에 기존 ‘룰’대로 대처했다간 자칫 외형과 이익 모두 꺾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코스트코코리아 새벽 배송의 ‘주문 허들’은 5만원이다. 경쟁사인 트레이더스가 SSG닷컴에서 새벽 배송을 받으려면 12만원 이상 주문을 조건으로 정해놓은 것과 비교하면 ‘허들’을 상당히 낮춘 셈이다.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새벽 배송은 유통업체 입장에선 적자의 주범”이라며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상품이 장바구니에 많이 담길수록 배송 비용이 떨어지는데 5만원 이상 주문이라고 하더라도 코스트코의 이익률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스트코코리아는 2020 회계연도(2020년 9월 1일~2021년 8월 31일)에 5조3522억원의 매출과 177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16개 매장만으로 5조원 넘는 매출을 낸 것으로, 매장당 매출은 국내 유통업체 최대다.

외형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2015 회계연도 4.5%에서 5년 만에 3.3%로 떨어졌다. 2020 회계연도만 해도 판매및관리비가 약 1000억원 증가했다. 인건비, 판촉비, 운반비 등에서 증액이 비용 증가의 원인이었다. 서울, 경기 전역에 새벽 배송을 하게 되면 판관비는 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트코의 캐치프레이즈는 ‘좋은 물건을 값싸게’다. 이를 가능케 한 핵심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막강한 소싱 능력과 압도적인 판관비 관리다.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인 P&G조차 코스트코에 납품하려면 매년 혹독한 경쟁을 뚫어야 할 정도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라면을 예로 들면 코스트코엔 신라면, 진라면 등 가장 잘 팔리는 6~8개 정도의 상품만 진열돼 있다”며 “6개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면 하위권에 있는 5, 6위는 탈락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스트코는 자체 브랜드(PB 혹은 PL)인 커클랜드를 활용해 제조사와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CNN) 보도에 따르면 코스트코 PB 브랜드인 ‘커클랜드’는 2021년 회계연도 기준 매출 580억달러(약 71조원)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1920억달러)의 30%에 해당한다.

코스트코는 전 세계 어느 매장이든 단층 짜리 창고형 할인점이라는 동일한 유형의 매장을 운영(한국만 예외적으로 2층 매장을 허용)함으로써 판관비 관리의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다. 팔레트 단위로 물건을 옮기고 진열함으로써 이마트 같은 일반 할인점에 비해 인건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배송 제로’는 판관비 관리의 ‘끝판왕’이다. 코스트코는 고객이 차를 가져와 직접 물건을 싣고 가도록 한다는 철칙을 오랫동안 고수했다.

엄격한 소싱과 판관비 관리로 이익을 남기지 않고 물건을 팔되, 코스트코가 가져가는 몫은 오로지 회원들의 연간 회비로만 충당한다는 것이 코스트코가 늘 강조하는 ‘유통의 본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스트코의 캐치프레이즈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코스트코는 회원비에서 배송비를 충당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익률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외형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e커머스 전쟁터
코스트코코리아를 ‘친절하게’ 만든 핵심 요인은 국내 e커머스 산업의 빠른 성장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체 커머스 산업 규모는 4830억달러에 달했다. 이 중 e커머스는 1960억달러로 전체에서 약 40%의 비중을 차지했다.

유로모니터는 한국의 e커머스 성장성을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전망했다. 2025년이면 이커머스 규모가 2910억달러로 성장해 전체(6160억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만 해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54% 급증하며, 22조원을 돌파했다.

쿠팡은 기존의 e커머스와는 차원이 다른 공세를 펴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프레시 부문을 강화하면서 다이다닉 프라이싱(경쟁사 대비 최저가로 가격 수시 조정)의 타깃을 코스트코와 트레이더스 등 창고형 할인점에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면, 생수 등 가공식품을 비롯해 축산물 등 신선식품 가격을 코스트코와 동일하게 책정하는 식이다. 쿠팡 회원은 로켓배송 서비스로 주문 금액에 상관없이 당일, 익일 배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스트코코리아로선 영역 침탈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레이더스의 빠른 추격도 코스트코코리아의 부담이다. 트레이더스 매출은 2019년 2조3371억원에서 지난해 3조3150억원으로 빠르게 불어났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글로벌 소싱을 통해 코스트코만이 판매할 수 있는 치즈류의 상품 등을 제외하면 트레이더스는 철저하게 코스트코코리아의 가격과 연동해 제품을 판매한다”며 “회비도 없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2%대로 코스트코코리아보다 1%포인트가량 낮은데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더 많은 몫을 돌려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코스트코코리아는 올해부터 공격적인 출점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8월에 김해에 이어 내년엔 청라점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이후에 서울 고척점과 전북 익산점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올 초엔 21년 만에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자본금을 2641억원에서 2779억원으로 확대했다. 2019년 경기 하남점 출점 이후 3년 만에 전국구로 영토를 넓히는 셈이다.

e커머스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코스트코가 장악하고 있는 창고형 할인점은 특유의 장점을 활용해 오프라인 유통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1인 가구 급증으로 대형마트는 타격을 받고 있지만 창고형 할인점은 공동 구매 족들이 싸고 품질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유통 채널 중 창고형 할인점의 성장성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1998년 진출 이후 24년간 부침 없이 권좌를 지켜 온 코스트코코리아가 또 한 번 저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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