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단의 파행을 겪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에 서울시가 중재안을 마련하며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4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조합과 시공사업단 모두 서울시가 지난달 30일 마련한 중재안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조합은 중재안을 전반적으로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시공사업단은 정상적인 공사 진행을 보장할 수 없는 중재안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서울시는 중재안에 10개 조항을 담았다. 우선 조합에는 조합이 절차적 하자를 주장해 공사중단 사태의 단초가 된 공사비 3조2000억원 증액 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시공사업단에 제기한 소송을 취하할 것과 분양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용과 공사 기간 연장·공사 중단으로 인한 손실 등의 책임을 질 것, 사업 전권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SH공사 등에 위임하라는 주문도 담겼다.
시공사업단에는 공사를 재개하고 최근 논란이 불거진 조합의 마감재 고급화 요구는 조합과 협의해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오는 8월 대출 만기가 다가오는 사업비 7000억원 보증 연장에 협조하라고 했다. 사업 전권을 위임받은 사업대행자가 내리는 금융비용, 마감재 고급화 등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조합과 달리 시공사업단은 "본 중재안을 수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린다"며 중재안에 대한 불수용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의 중재안으로는 분쟁거리가 남아 정상적인 공사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시공사업단은 답변서에 공사를 재개하기 이전에 △조합의 소송 취하 △'공사계약 변경의 건' 의결취소를 재취소하는 총회 진행 △일반분양 모집공고를 통한 입주 일정 확정이 선행돼 공사 재개의 근거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또한 조합의 자재 승인 지연으로 인한 공사 기간 연장과 그로 인한 추가 공사비 등의 사항도 계약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감재 고급화에 대해서도 조합과 협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공사업단은 답변서에서 "조합이 마감재 고급화를 명분으로 특정 업체를 강요하고 기존 계약된 자재 승인을 지연한 것이 공사중단의 원인 중 하나"라며 "조합은 고급화에 필요한 재원을 분양가 건축가산비로 확보하려 한다. 신속한 일반분양을 방해하는 조합의 고급화 추진은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금융권과 정비업계에서는 중재가 실패할 경우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과거 성동구 '서울숲 트리마제'의 행보를 답습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숲 트리마제는 조합이 분양가 등을 두고 시공사와 갈등을 빚다 사업이 지연되며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부도난 것을 시공사가 인수해 지은 곳이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사업 부지와 분양 권리를 박탈당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법대로 가면 둔촌주공은 제2의 트리마제가 된다"며 "(사업비) 대출 만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합이 시공사업단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도 "6100여명의 조합원이 집을 잃으면 사회적인 충격이 크겠지만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며 "조합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여론도 우호적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재는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편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 규모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사업이다.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마찰을 빚으면서 지난 4월 공정률 52%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시공사업단은 사업 현장을 폐쇄하고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