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융권이 검사 출신 금감원장 우려하는 까닭

입력 2022-06-05 17:15   수정 2022-06-06 00:10

6·1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경제 분야 인사가 금융감독원장에 오르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금융위원장엔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이 일찌감치 내정됐지만, 금감원장을 놓고선 검사와 경제 관료 출신이 경합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선거 이후 대통령실에서 차기 금감원장이 ‘검찰 출신’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전 정부에서 벌어진 금융 스캔들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법무부가 전 정부에서 없어졌던 증권·금융범죄합동수사단을 새 정부 출범 직후 부활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합수단이 당장 전 정부에서 ‘봐주기 수사’ 논란을 빚었던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건을 재조준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합수단, 나아가 검찰 차원의 금융범죄 재수사를 원활히 하려면 금감원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는 게 윤 대통령의 시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 박순철 전 서울남부지검장 등 전직 검사는 물론 현직 검사가 금감원장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가 여권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더 큰 그림’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당장 대장동 개발 특혜·비리의 ‘윗선’ 의혹과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 수사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큰데, 세밀한 수사를 위해선 금감원의 협조가 필수적이란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각종 부패, 비리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의 흐름”이라며 “금감원을 통해 이를 낱낱이 살펴보겠다는 것 말고는 (검찰 출신 금감원장이 필요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금융권은 새 정부 들어 불어닥칠 폭풍에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옵티머스 라임 등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재수사가 본격화한다면 불완전판매 및 내부통제 미흡 등의 이유로 경영진과 직원들이 수차례 금감원을 오가고 징계받았던 지난 수년간의 상황이 반복될 수 있어서다. 금감원 내부의 걱정도 감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 최근 당면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선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검찰 출신이 금감원장이 되면 금융 규제 완화와 금융산업 육성, 시장 친화적인 감독체계 개편 등 금융권이 기대했던 개선도 뒤로 밀릴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공정한 거래 관행을 만들어야 할 금감원이 사정 정국의 도구가 된다면 부작용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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