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모듈러(조립식) 건축 전문 업체인 유창이앤씨에는 올 들어 대형 건설회사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발주하는 공공주택 사업에 조인트벤처(합작회사)로 참여하자는 대형 건설사들의 요청이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다. 유창이앤씨 고위 임원은 “내년 이후 국내 모듈러 주택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면서 미리 시공 실적과 경험을 축적하려는 대형 건설사들의 물밑 작업이 치열하다”고 했다.
‘레고형 주택’인 모듈러 주택 시장이 급팽창할 조짐이다. 전통적인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사용했을 때보다 공사 기간을 절반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는 데다 공장에서 상당수 작업이 미리 이뤄져 현장의 인력난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서다. 소음·분진·폐기물이 적고 올초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리스크(위험요인)까지 완화할 수 있어 일부 전문 업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모듈러 주택 시장에 대형 건설사들까지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용적률·건폐율 인센티브까지 부여할 경우 국내 주택시장에 ‘빅뱅’이 올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모듈러 주택은 기둥·슬래브(판 형태의 구조물)·보(수평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재) 등 주요 구조물 제작과 건축 마감을 공장에서 미리 한 뒤 현장으로 운송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설계·구조·시공 등 전통적인 기술 분야 외에 생산·운송·조립 등 다양한 부가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돼 첨단 융합기술 공법으로 불린다. 공장에서 선제작하기 때문에 폐기물 발생이 적고 재활용도 가능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
전통적 철근 콘크리트 공법은 철근을 먼저 세운 뒤 거푸집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붓는다. 이 과정에서 양생 작업이 필요해 공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날씨나 현장 인력 구조에 따라 공사 진행 속도가 달라져 단기간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긴 쉽지 않다. 250만 가구 이상 주택 공급을 목표로 하는 정부가 모듈러 주택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2010년대 후반부터 LH·SH가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시도하면서 모듈러 주택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은 1457억원 규모다. 전년(267억5000만원)보다 444.67%(5.44배) 급증했다. 모듈러 공법으로 세워진 건축물도 2020년 7건에서 지난해엔 68건으로 뛰었다.
모듈러 주택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눈여겨본 대형 건설사들도 발 빠르게 시장에 진입했다. 업계에선 모듈러 주택 시장이 5년 이내 1조~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건설사 기술 담당 임원은 “정비 사업을 통해 1000가구를 공급한다고 했을 때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론 3년6개월이 걸리는데, 모듈러 공법을 사용하면 1년8개월이면 된다”며 “아직은 저층 공동주택에 머물러 있지만 조만간 고층 아파트로까지 확산돼 궁극적으로는 전체 주택 시장의 10~15% 정도가 모듈러 주택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GS건설, DL이앤씨, 현대엔지니어링 등 대형 건설사뿐만 아니라 KCC건설 등 중견 건설사들도 모듈러 주택 관련 인력을 확충하고 연구개발(R&D)에 나서고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인구 고령화로 건설 현장 근로자 확보가 쉽지 않고 인건비는 치솟고 있다”며 “ESG 경영이 강조되고 있어 지금처럼 먼지 날리고 소음이 요란한 건설 현장이 유지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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