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백내장 딜레마'…과잉진료에 보험금 줄줄, 막자니 민원 봇물

입력 2022-06-06 17:58   수정 2022-06-14 15:08

“명문대 출신, 경력 15년 전문의가 미세 절개로 밝은 시력을 보장합니다.”

포털사이트에서 ‘백내장’을 검색하면 백내장 수술을 겸한 시력교정 수술을 권하는 광고가 줄줄이 뜬다. 백내장 수술은 최근 수년간 실손보험금 누수의 주범으로 꼽혔다. 공짜로 시력교정 수술을 해준다며 체험단을 모집한 뒤 최대 1500만원의 다초점렌즈 삽입술을 유도해 보험금을 타내거나 브로커가 환자를 데려오고 리베이트(사례비)를 받는 등의 의료법 위반 행위도 많았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는 지난 4월 백내장 보험사기를 제보하면 특별포상금을 지급하고 비급여 항목의 과잉 진료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백내장 민원에 ‘울며 겨자 먹기’ 대책
6일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백내장 수술로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4570억원에 달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에만 전체 실손보험금 지급액의 17.4%인 2053억원이 나갔다. 작년 말엔 전체 실손보험금 중 9%였는데 석 달 만에 배에 가깝게 늘어났다. 이는 일부 안과에서 백내장 증상이 없는데도 수술을 권유하고 브로커를 통해 환자를 소개받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 안과는 증빙자료를 허위로 꾸며 백내장 진단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현미경 검사 영상의 해상도와 밝기를 조작해 확인이 어렵게 만들거나 필터를 씌워서 백내장이 심각한 것처럼 조작하는 식이다.

이에 보험업계는 과잉 수술 등으로 인한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해 보험금 지급 심사를 엄격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피해를 입었다는 소비자 민원이 늘어나자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손보협회와 생보협회는 이날 ‘백내장 수술과 관련해 실손보험 가입자 보호를 위해 더욱 힘쓰겠습니다’는 자료를 냈다.

백내장 전문 상담 콜센터를 운영하고 ‘보험사기 예방 모범규준’에서 정한 소비자 보호업무 절차를 더욱 철저하게 준수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과잉 진료를 하는 안과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특별신고 포상금 제도’도 이달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환자를 신고하면 100만원, 브로커는 1000만원, 병원 관계자는 30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두 협회가 ‘과잉 진료와 보험금 누수가 심각하지만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모순적 내용의 자료를 낸 배경은 금감원의 엄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4월부터 심사가 강해진 이후 민원이 늘자 금감원은 최근 보험사 관계자들을 불러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늘어나는 보험금 누수 어쩌나
보험사들은 “금감원이 민원이 많다고 지적하면 어쩔 수 없이 심사가 다소 느슨해지고 다시 과잉 진료가 늘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월처럼 2000억원이 넘는 보험금이 지급된다면 한 해 2조원의 실손보험금이 백내장 단일 항목으로 지급될 수 있다. 연구원은 작년 말 실손보험의 예상 손실이 추세대로 진행되면 10년간 실손보험에서만 100조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금감원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금감원이 이날 공개한 ‘2021년 실손보험 사업 실적 및 감독 방향’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는 1~4세대 보험을 통틀어 3977만 명에 달했다. 지난해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수입에서 손해액(보험금)과 사업비를 제외한 적자는 2조8602억원을 기록했다. 금감원은 비급여 부문에 대한 통제 장치가 미흡하고 과잉 진료 유인이 내재돼 있다며 과잉 진료의 대표적 사례로 백내장을 들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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