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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전자’ 터널에 갇힌 삼성전자 주가가 좀처럼 오르지 못한다. 대장주가 힘을 못 쓰니 시장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새 500만 명으로 불어난 개인투자자의 원성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대응은 회사 차원이 아닌, 임원들의 자발적 자사주 매입이다. 기간과 목표도 없이 각자 눈치껏 사는 매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10만전자’를 향한 담대한 스케줄 발표를 기대한 투자자 사이에선 “장난치나”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워낙 많은 개인이 주식시장에 진입한 터라 삼성전자 주가의 정체 원인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경영진이 왜 과거처럼 자사주 매입·소각과 같은 주가 부양 조치를 내놓지 못하는지도 궁금했다. 알고 보면 ‘6만전자’ 탈출은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풀이다. 고금리 고물가로 세계 경제가 하방 압력을 받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격돌이 냉전에서 열전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삼성전자의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 산업계가 당면한 내부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재와 기술이 아니라 설비 중심의 자산, 그 자산가치를 밑도는 주가, 연 1%짜리 예금에 묶여 있는 자기자본, 점증하는 경영권 방어 부담, 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는 풍조 등이다. 현금만 잔뜩 움켜쥔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한국 기업들의 미래 생존전략을 탐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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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을 뛰는 한국 대기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총자산과 자기자본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return on equity)은 낮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기자본과 ROE가 동시에 높으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론 두 가지 모두 충족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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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구조별 특성은 있다. 그것이 해당 기업의 강점 또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총자산은 427조원으로 애플(457조원), 구글(431조원), 마이크로소프트(408조원)와 비슷했다. 현대차·기아도 300조원에 달해 인텔(202조원)을 가볍게 넘어섰다. 자본총계(자기자본)는 우리 기업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삼성전자는 304조원으로 어떤 글로벌 기업보다 많았다. 이익 창출과 주주 출자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인 애플의 자기자본은 719억달러(86조원)에 그쳤다. 구글(302조원)만 삼성전자에 필적할 뿐, 마이크로소프트(192조원) 아마존(166조원) 인텔(114조원) TSMC(93조원)는 100조~200조원 이상 낮았다. 현대차·기아의 자기자본도 117조원에 달했으며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인텔 플래시사업부 인수대금으로 70억달러를 지출하고도 62조원의 자본을 남겨놨다.
한국 대기업들이 무역금융을 제외하고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언제든지 수십조원짜리 인수합병(M&A)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생산설비를 주축으로 한 자산 충실도는 한국을 따라올 기업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시가총액을 들여다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467조원(보통주 기준)이었다. 압도적 국내 1위지만 애플의 8분의 1, 마이크로소프트의 7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만 TSMC는 자산과 자기자본이 삼성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시가총액은 1.6배에 달했다. 자기자본은 애플의 4배인데 시가총액은 13%에 불과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쪽 기업 다 정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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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아무리 큰돈을 벌어도 ROE가 낮은 기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익금을 자신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그저 회사에 쌓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무차입 경영에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경우든 자본운용의 효율성을 먼저 생각한다. 차입 이자보다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면 자기자본으로 배당을 주고 회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라고 요구한다. 삼성의 부채비율이 40% 아래인데 애플은 400%가 넘는 배경이다. 애플은 빚을 내서라도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는 패턴을 계속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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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래 투자를 위해 쌓아놓은 현금을 자사주 소각 방식으로 날려버리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너무 많은 현금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투자를 촉구해야 할 것이고, 투자할 의지나 역량이 없다면 경영진을 문책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투자는 크든 작든, 자신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원천기술은 대부분 미국에서 작동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자율주행 우주개발 블록체인 메타버스 바이오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현대차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가 좋은 사례다. 물론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전기차, 수소차를 넘어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튼튼한 자기자본 없이는 어려운 과제다.
한국은 열강이 충돌하는 동북아에서 가장 위태로운 지형에 있다. 그곳에 몸담은 기업들은 더 아슬아슬한 절벽에 서 있다. 기축통화국의 안전한 보호를 받으면서 온갖 종류의 원천기술로 무장한 기업들과 동일한 재무전략을 가동할 수는 없다. 그들이 자사주를 태우고 배당을 늘린다고 해서 무작정 따를 일이 아니다. 기업의 생존은 언제나 기술과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ROE를 끌어올리는 길이기도 하다.
조일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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