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파산면책 신청 중입니다. 시간이 지난 다음 유턴기업에 대해 또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해외에 마련한 생산시설을 한국으로 옮기는 ‘유턴기업’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했다가 평생 일군 재산을 날린 민덕현 전 거성콤프레샤 사장이 지난 8일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본지 6월 9일자 A1,3면 참조
민 전 사장은 가족과 떨어져 산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원룸에 지낸다. 전국의 건설공사가 있는 곳을 따라다니며 일당 12만~15만원을 받고 일용직 근로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 김포, 충남 천안, 충북 청주, 전남 함평의 공사 현장을 돌았다. 인력사무소에서 불러주면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월세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거나 멍하니 보낸다고 했다. 한 달에 보름 정도밖에 일을 못 한다. 고3 수험생 딸과 고2 아들을 못 본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최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부인에게 생업을 떠맡겨 미안한 마음이 큰 탓이다.
민 전 사장은 정부와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70억원 넘게 투자한 세종시 공장을 정상적으로 매각할 수 있게 대출 기한을 6개월만이라도 연장해 달라고 2020년 초 은행과 보증기관에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값을 받고 시세대로 공장을 매각했으면 52억원에 달하던 빚을 모두 갚고 재기할 자금 20억원은 마련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공장은 작년 10월 경매로 41억원에 넘어갔다. 그는 “정말 죽고 싶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장영문 전 파워이앤지 사장과는 인터뷰 시간을 조율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가 최저임금인 월 191만원을 받으며 작업하는 시간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 전 사장도 가족과 떨어져 지낸 지 오래다. 중국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차린 파워이앤지의 경영난이 심해지던 2016년 1월부터 부인과 별거를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던 파워이앤지는 2016년 5월 최종적으로 5억5000만원의 대출 만기를 막지 못했다. 정부가 약속한 공장 부지 및 설비 보조금 12억원이 모두 나왔다면 해결됐을 문제라는 게 장 전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12억원 중에서 3억원은 5년 후에 지급한다고 하고 나머지 9억원 중에서 한국 사업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보증보험예치금 3억원, 보증료 7000만원을 내라고 했다”며 “사채업자들이 하는 ‘꺾기(대출금 중 일부를 선이자 항목으로 다시 가져간 뒤 원금을 부풀려 계산하는 수법)’와 다른 게 뭐냐”고 했다.
이들 두 전직 대표가 사업에 실패하고, 날품팔이 신세로 전락한 게 전적으로 정부 탓만은 아닐 것이다. 사양산업인 까닭도 있을 것이고, 경영상 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국가가 공언한 약속을 믿고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정작 지원과 도움이 필요할 때 정부는 각종 복잡한 규정을 앞세우며 모른 체했을 뿐이었다.
두 전직 유턴기업 대표의 기막힌 처지를 알린 한경 보도가 나간 뒤 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유턴기업 보조금 집행 고시에 따라 보증보험용 예치금이 필요했으며, 인원고용 보조금을 정상적으로 지원했으나 애초 밝힌 상시 고용인원을 유지하지 못해 일부 환수한 것”이라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내놨다.
산업부의 해명을 전해들은 장 전 사장은 “무책임하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보조금만 챙기고 ‘먹튀’ 하는 기업이 있을까 봐 조건을 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정부를 믿고 한국에 돌아온 기업인들이 힘들게 됐으면 같이 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결과적으로 산업부의 해명은 유턴기업인들의 가슴에 두 번이나 칼을 들이댄 셈이 됐다. 무엇보다 유턴기업의 생존율 등 기본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올 5월까지 복귀한 113개 유턴기업의 이름을 공개해 달라는 요청조차 기업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밝히길 거부하는 산업부가 할 소리는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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