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물가상승은 공급 충격 여파…금리인상 효과 얼마나 있겠나"

입력 2022-06-14 17:39   수정 2022-06-15 01:36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 차관,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두 차례 국가적 위기에 맞선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은 “지금 물가 상승은 경기 과열이 아니라 전쟁, 코로나 같은 공급 충격 여파”라며 “금리를 인상한다고 효과가 얼마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상이 중소 상공인과 부채가 1900조원에 달하는 가계를 파탄으로 몰아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금리 인상론이 힘을 받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 신중론을 편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일본은 왜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겠느냐”며 “한국의 대일(對日) 경쟁력은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원화가 고평가돼도 문제가 없을까”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집값 안정 실패에 대해선 “한마디로 공급 부족 때문”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강화한) 종합부동산세는 동서고금에 없던 정치폭력”이라고 비판했다. 한경은 10여 년 만에 다시 닥친 국가적 위기를 헤쳐갈 조언을 듣기 위해 강 전 장관을 만났다. 인터뷰는 본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국내외 경제 상황과 관련해 ‘복합위기’란 말까지 나옵니다.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봅니까.

“경제적 요인이 복합된 위기가 아니라 팬데믹, 전쟁, 무역 분쟁으로 일어난, 과거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위기입니다. 경제 외적인 이유로 일어난 위기이기 때문에 비교도 어렵습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땐 어려웠지만 그래도 ‘정답이 있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정답 없는 숙제’를 풀어야 할 상황입니다.”

▷지금 최적의 ‘정책 조합’은 뭘까요.

“미증유의 위기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재정·금융대책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보다 직관적이고 창의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빵 제조용 쌀가루 생산 같은 게 좋은 사례입니다. 그리고 법인세율 인하, 규제 완화 등 기업 경영 환경을 과감히 개선해야 합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습니다.

“지금은 경제 외적인 요인에 의한 공급망 붕괴와 공급량 부족이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재정·금융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미국은 공급망 붕괴 전 경제와 노동시장이 과열됐기 때문에 금리 인상과 통화 긴축을 하는 게 말이 됩니다. 반면 우리는 경제와 노동시장이 위축된 상황입니다. 할당관세나 유류세 인하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해야겠지만, 공급망 차질이나 공급 부족에 의한 물가 상승은 정부가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들도) 인내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요.”

▷한은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급격한 금리 인상은) 코로나 때문에 부채로 연명한 중소 상공인과 1900조원 규모의 부채를 가진 가계를 파탄으로 몰아 겨우 살아나는 경기를 침체시키고, 현재도 일자리가 모자라는 노동시장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한은은 이미 (지난 4, 5월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중소 상공인과 가계에 10조원 가까운 부담을 불러왔습니다.”

▷지금 환율은 어떻습니까. 고환율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원·엔화 환율이 100엔당 1000원 이하로 간 1997년과 2008년 (한국에) 위기가 왔습니다. 당시 우리 국제수지는 계속 적자였기 때문에 고평가된 환율(원화 강세)을 실제 수준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수준이 통계적으로 보면 100엔당 1000원 정도였는데, 이에 맞추지 못했던 1997년은 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지만 2008년은 달러당 환율을 1200원대 이상으로 가도록 용인해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어 위기를 피했다고 봅니다. 환율이 높으면 물가는 오르지만 국제수지 방어와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과정입니다. 지금 환율은 종합적으로 볼 때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물가 안정을 위한 환율 (상승) 억제는 약보다 독이 될 위험이 큽니다.”

▷원화 약세 정책을 펴야 한다는 건가요.

“원유와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이 주요인이지만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이 세계 무역을 주름잡을 때 달러당 250엔이던 환율이 1985년 플라자합의로 달러당 120엔대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린 30년’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진국 중 왜 일본만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 일본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대일 경쟁력은 원화가 고평가돼도 문제가 없을까요. 우리는 순대외채권국이기 됐기 때문에 실물 투자가 아닌 달러 유입은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자본시장에서의 달러 유출이 과도한 경우가 아니면 환율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 안정에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다고 봅니까.

“간단한 원리입니다. 공급 부족 때문입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공급을 늘리고 실수요 거래를 막는 장애를 제거해야 합니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을 순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보유세를 2020년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했습니다.

“(종부세의 경우) 낮추는 것이 아니라 폐지해야 합니다. 동서고금 어떤 나라도 우리 같은 종부세를 부과한 예가 없습니다. 재정학에 나오는 보편성의 원칙, 형평성의 원칙, 충분성의 원칙 등 어떤 조세원칙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보유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로, 단일세율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장면 가격을 부자라고 10만원 받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1000원 받지는 않지 않습니까.”

▷전에 종부세를 ‘세금이란 이름을 빌린 정치폭력’이라고 했습니다.

“종부세는 소득이 없고 집만 가진 은퇴자에겐 ‘몰수형’이나 다름없습니다. 투기와 관계없이 아파트 한 채에 눌러사는 은퇴자에게는 정치폭력입니다. 지난 두 번의 선거(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한 것도 종부세 영향이 큽니다. 지금 여당이 소수당이라도 종부세는 재산세에 통합해 폐지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니면 다음 선거에서 투표로 심판받을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규모 주택 공급을 공약했지만 실제론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을까요.

“전에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간부가 ‘우리 같은 그린벨트는 그 어떤 나라에도 없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린벨트는 집 있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숲이지만 집 없는 사람에게는 ‘원망의 숲’이라고 누군가 말했죠. 결혼과 출산 기피의 주요인인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풀어 결혼하는 신혼부부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갈수록 떨어지는 잠재성장률은 어떻게 하면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건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겁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한국에 이민을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800만 재외동포들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거나 자유입국이라도 보장하는 방안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윤석열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새 정부마다 항상 규제개혁을 들고나왔습니다. 모든 규제는 구체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획일적이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발생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의 폐지와 신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규제형평제’, 즉 구체적 사례별로 형평의 원칙에 따라 행정심판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제도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법인세 인하 방침은 어떻게 봅니까.

“1975년 이후 한국 통계를 분석하면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세는 세율을 낮출수록 세입이 늘어났습니다. 어디까지 낮출 것인가는 경쟁국 수준이 좋은 기준이 됩니다. 우리의 경우 최고세율은 20% 정도(현재는 25%)가 적당합니다.”

▷감세를 하면 국가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2009년 미국 대통령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크리스티나 로머가 1970년 이후 2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재정을 실증연구한 걸 보면 1달러의 감세는 3달러의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감세는 중장기적으론 증세 정책입니다.”

▷감세는 결국 ‘부자 감세’ 아니냐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또 하나의 ‘질투의 경제학’ 아닐까요. 감세로 정부세입이 더 많이 들어오고 (그 세입을 통해) 가난한 자를 위한 지출을 늘리면 부자 감세를 안 한 것보다 좋은 것 아닌가요.”
■ 강만수 前 장관은
2008년 금융위기 때 한·미 통화 스와프 기여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은행과 함께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에 기여했다. 당시 금융위기를 피하기 위해 한은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시장에 팔면 국채 금리가 뛰어 미국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역(逆) 스필오버(reverse spill-over)’ 논리로 미국을 설득했다. 강 전 장관은 한경 인터뷰에서도 “지금 대외 지급에 큰 문제는 없지만 방어선은 많을수록 좋다”며 “2008년 어렵게 체결한 한·미 통화 스와프가 없어진 건 애석한 일”이라고 했다.

강 전 장관은 재정경제원 차관 시절 외환위기를 맞았고,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땐 기재부 장관으로 위기와 싸웠다. 이 과정에서 국내 물가보다 국제수지 방어를 위한 고환율 정책을 펴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45년 경남 합천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제8회 행정고시 합격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원 차관
△기획재정부 장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산은지주 회장


만난 사람=주용석 경제부장/정리=정의진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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