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수행' 논란 핵심은 '정치 메시지' [여기는 대통령실]

입력 2022-06-15 12:34   수정 2022-06-15 13:00


“수행이나 비서팀이 전혀 없어 혼자 다닐 수도 없고. 어떻게 방법을 좀 알려주시죠”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에서 억지웃음을 보이면서 답답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 경남 봉하마을에 권양숙 여사를 만나러 갈 때 지인과 동행해 논란이 인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다.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거침없이 대답하던 평소 분위기완 확연하게 달랐다. 취재 기자들 사이에선 “대통령도 부인 문제는 범인(凡人)과 다를 바 없다”는 우스개 소리들이 나왔지만, 다른 한편에선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언론이 제기하는 논란의 핵심은 김 여사가 대통령실 경호와 의전을 받는 공식 행사에 지인을 대동한 게 적절했냐는 것이다.

당초 온라인에선 김 여사가 대동한 지인이 무속인이라는 루머도 퍼졌지만 대통령실 등이 확인한 결과 김량영 충남대 무용학과 겸임교수로 파악됐다. 이날 조선일보는 김 여사가 봉하마을 방문 행사 당시 “코바나(컨텐츠) 직원 두명이 동했했고, 이들은 김 여사 수행을 위해 대통령실 채용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코바나컨텐츠는 김 여사가 차린 전시기획사다. 김 여사는 최근 “내조 활동에 전념하겠다”며 코바나컨텐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량영 교수도 과거 코바나컨텐츠 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부인의 공식 일정을 사적 지인 도왔다면 비선 논란을 자초하는 것”(조오섭 대변인)이라며 거세게 몰아세우고 있다. 이런 공세의 이면엔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이자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이었던 ‘최순실’ 프레임을 씌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대통령실은 답답한 심정을 드러낸다. 김 여사의 방문은 당초 비공개 행사로 기획됐지만, 방문 사실을 알게 된 언론들의 요청이 잇따르면서 행사가 공식화된 측면이 있어서다.

윤 대통령도 이날 “봉하마을은 국민 모두가 갈수 있는 데 아니냐”고 반문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이 과도한 정치 공세를 편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의 일정이 앞으로 비공개로 진행되면 언론의 취재 과열로 인해 더 큰 부작용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정치권에선 차라리 “(배우자 담당) 제2부속실을 만들어서 공적인 역할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박지원 전 의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과거 영부인을 담당하는 제 2부속실의 폐지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수술하겠다”며 윤 대통령이 내건 주요 대선 공약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제 2부속실을 만들자는 의견’을 묻는 질문에 “공식 비공식 업무를 어떻게 나눠야 될 지, 또 대통령 부인으로 안할 수 없는 일도 있다”며 “저도 (대통령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 한번 국민 여론을 들어가면서 차차 생각해보겠다”고 한 이유다.

정치권 일각에선 ‘제 2부속실의 존폐’ 여부는 논점을 벗어났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 여사의 행보가 논란이 되는 것은 공적인 수행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김 여사가 최근 보여주는 정치적 행보와 정치적 메시지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여사와 권양숙 여사와 만남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여사는 권 여사와 비공개 만남 당시 사적으로 나눴던 발언을 언론에 공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너(윤 대통령)는 통합의 대통령이 돼라’고 말해주셨을 것 같다” “국민통합을 강조하신 노 전 대통령을 모두가 좋아했다” 등 발언엔 윤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은 강인선 대변인 명의의 서면 브리핑으로 공개됐는데, 대통령실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실의 주요 업무를 지근거리에서 취재·공유하는 ‘풀기자’가 퇴장한 상황에서 나눈 사적인 환담 내용은 통상 공개하지 않기때문이다.

지난 13일 공개된 김 여사의 언론 인터뷰도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여사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개 식용 문화에 대해 “경제 규모가 있는 나라 중 개를 먹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라며 “보편적인 문화는 선진국과 공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이를 위한 수단으로 “영세한 식용업체들에 업종 전환을 위한 정책 지원을 해 주는 방식”을 언급하면서 “동물학대와 유기견 방치 문제, 개 식용 문제 등에서 구체적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영부인이 ‘동물권’ 등의 주제를 놓고 개별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개 식용 문화)에 대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

이런 김 여사의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김 여사 측 지지자들은 “영부인의 새로운 롤모델”(강신업 변호사)이라며 대체로 긍정적이다. 반대편에선 “대선 과정에 김 여사가 국민과 한 약속을 어기고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김 여사는 지난해 12월 ‘허위 경력 논란’이 벌어지자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권에선 김 여사가 아내의 역할이 아닌 영부인으로서 공개 행보를 계속하려면 과거 본인의 발언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런 비판 여론에 대해 다소 소극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은 과거 약속한 조용한 내조의 범주를 벗어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직 대통령 부인께 인사를 드리러 가고,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시는 것이 조용한 내조에 속하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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