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들은 거둬들인 현금을 곳간에 채워넣기만 하고 있다. 고유가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시추설비 투자와 생산 확대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셰일업체들은 소극적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셰일업체들이 유가와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추를 일부러 더 미루고 있는 것 같다. 잉여현금으로 자사주 매입 등에만 나서는 이들 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세금 부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 의회의 횡재세 도입 움직임을 지지한 것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리서치업체 리스태드에너지 자료를 인용해 “유가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올해 미 셰일업체들의 잉여현금흐름은 1800억달러(약 233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잉여현금흐름이란 투자자본과 관리지출 등을 제외하고 기업에 순유입되는 현금의 양을 뜻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완화로 경제 활동이 재개되며 에너지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분석업체 S&P글로벌원자재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셰일업체들이 확보하게 될 현금은 지난 20년 동안 벌어들인 현금의 총합을 넘어설 전망이다. 라울 르블랑 S&P 북미 원유·가스부문 대표는 “그야말로 현금 쓰나미”라며 “이들 업체는 올 들어 막대한 현금을 바탕으로 과거 대규모 손실을 대부분 만회했다”고 분석했다.
셰일업체들의 주가도 회복세다. 올 들어 뉴욕 증시가 급락했지만 미국 셰일 원유·가스 업체들의 주가는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 들어 S&P500지수가 17% 하락하는 동안 해당 지수에 포함된 에너지 종목들의 주가는 50%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가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은 더욱 치솟았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당 12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미 정부와 의회는 유가를 낮추기 위해 셰일업계의 설비투자 확대와 추가 생산을 촉구했다. 하지만 셰일업체들은 정치권의 압박에도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생산량이 줄어들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대신 투자자에게 두둑한 현금배당을 해주는 등 돈 잔치만 벌이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 최대 셰일업체 9곳이 발표한 올해 1분기 배당금 지급 및 자사주 매입 규모는 94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새로운 유전 개발과 시추사업에 투자한 금액보다 54%나 많은 수준이다. 이들의 하루평균 원유 생산량은 1180만 배럴가량으로 코로나19 이전의 1300만 배럴을 밑돌고 있다.
닉 델로소 체사피크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단순히 생산을 늘려 성장을 도모하는 것보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을 배분하는 데 경영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체사피크는 시추기술 혁명을 토대로 미국 셰일 붐을 주도한 대표적 기업 중 하나다. 하지만 체사피크의 기술혁명은 원유가 시장에 과잉 공급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체사피크는 2020년 상반기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가 가까스로 회생에 성공했다.
델로소는 “과거 장밋빛 전망에 웃었던 셰일산업이 한꺼번에 무너졌고, 이를 회복하는 과정엔 뼈를 깎는 고통이 뒤따랐다”며 “경영진은 보수적인 운영 모델을 고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사피크는 향후 5년간 70억달러 규모의 배당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구인난 등으로 생산 비용이 급등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 증산 투자를 주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 들어 철강 등 채굴 장비 부품 가격은 지난해보다 50%가량 급등했다.
정치권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팩트셋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체 원유 생산량의 3분의 2가량을 셰일업계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 하원의원 30여 명은 셰일업체들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횡재세를 통해 연간 450억달러를 거둬들여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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