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정한 집회와 시위 기준을 지킨다면 문제 될 게 전혀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자유와 법치를 강조해온 소신에 비춰볼 때 당연한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법률가 출신 대통령의 일관된 ‘법치 수호’ 의지로 평가해줄 여지도 있다. 지난 5년간 권력의 자의적인 법 적용에 시달린 한국적 상황에서 신선하고 용기 있는 발언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시위를 은근히 ‘방관’ 내지 ‘두둔’한 듯해 적잖이 놀라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소음에 시달리는 이웃 주민들로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에 포함된다. 표현의 자유는 앙시앵 레짐(구체제) 붕괴 이후 모든 자유의 전제로 간주되는 핵심적 자유다. 공적 인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데도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만사법통’식의 기능적이고 형식적인 법치주의에 매몰돼 있지 않나 하는 경계심이 앞선다. 집회 시 한국의 주거지역 소음 기준은 85dB로 미국(60dB)보다 훨씬 느슨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법 위반이 없으니 괜찮다’는 주장은 입법의 완전무결성을 전제하는 잘못된 접근이다.
타락하기 쉬운 인간 본성과 잘못 결합한 법은 제도화한 폭력이다. ‘법대로’만 외친다면 지난 시절 횡행했던 거대 여당의 ‘입법 만능주의 폭주’를 비난할 근거도 희박해진다. 약탈적 세금폭탄도, 기형적인 위성 정당도, 국민 뜻에 반한 검수완박도 모두 정당화된다.
윤 대통령의 법치 신념이 오락가락한다는 의구심도 든다. 새 정부 출범 후 첫 민주노총 파업에 대한 대통령의 첫마디는 “법대로 대응”이었다. 하지만 엊그제 타결된 안은 법이나 원칙과 멀었다. 권력의 편의에 따른 선택적 법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
흔히 법률가의 한계가 지적된다. 법의 해석과 적용에만 능통하다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법 기술자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이자 국가원수다. 다수 국민의 정의감에 배치돼도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건 국가 최고지도자로선 곤란한 태도다. 대통령은 팔로어가 아니라 리더여서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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