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창사 이후 최대인 3000억원대 영업이익을 올린 국내 섬유·화학업체 A사는 올 들어 경영계획 목표를 두 차례 수정했다. 작년 11월 경영계획 수립 당시 올해 영업이익 목표는 1800억원이었지만, 지난달엔 500억원까지 낮췄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으로는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등 각종 돌발 변수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목표치를 더욱 낮춘 것이다. A사 관계자는 “비용 압박으로 당초 계획한 설비투자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 업종 하락세가 뚜렷했다.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업체인 대한유화는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1월 초 2578억원에서 509억원으로, 80.3%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롯데케미칼도 1조7158억원에서 67.4% 감소한 5600억원으로 낮아졌다. 제품 원재료인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4개 석유화학 업체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월 대비 3조7113억원(23.8%) 급감했다.
제조업 중 조선(1조1623억원·적자전환)과 자동차부품(1조1509억원·22.2%)의 영업이익 감소폭이 컸다.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업체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8131억원가량 늘어난 반면 자동차 부품업체는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완성차 업체 생산 차질로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대란 등 ‘3중고’에 따른 영향은 특정 업종에만 피해가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물가 상승→구매력 감소→수요 감소’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이 벌써부터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가치 하락)도 더 이상 수출기업에 호재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국내 기업들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부담이 이를 상쇄할 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잇따라 구축하고 있어 환율 상승 효과는 과거처럼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당초 한은은 지난해 11월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을 2.4%로 예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인 올 2월엔 2.2%로 전망치를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잇단 악재가 터지면서 전망치를 마이너스까지 낮춘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SK 등 주요 그룹은 이달 말부터 잇따라 경영전략회의를 열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화물연대 총파업이 극적인 협상 타결로 일단락되면서 한시름 덜기는 했지만, 기업 경영을 둘러싼 환경은 온통 안갯속”이라며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 경제도 흔들리고 있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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