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만 봐도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바 앨머슨의 작품이 그렇습니다. 곱슬머리 파마를 한 채 꽃봉오리에 둘러싸여,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얼굴을 한 그의 그림.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미소짓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고 부르죠. 앨머슨은 스페인 화가입니다. 2018년 국내 첫 전시로 40만 명이 관람객을 모았던 그가 ‘안단도(Andando)’ 전시로 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안단도’는 ‘걷다’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이번 전시는 그의 53년 일생을 그려낸 회고전입니다. 전시는 기존 유화 작품은 물론이고 벽화, 대형 조형물, 드로잉, 조각, 애니메이션 등 총 150여 점으로 꾸며졌습니다. 그의 다양한 예술 기법을 활용한 최신작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주엔 무심코 지나쳤던 작고 소박한 일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이런 화풍을 ‘소박파’로 부릅니다. 원근법, 명암, 구도, 색조 등 기존의 화법에 구애받지 않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화가들을 일컫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어딘가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자유분방한 느낌을 줍니다.
그는 다양한 여성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요리하고, 과자를 굽고, 아이와 손을 잡고 외출하고 파티도 여는 여인들. 화가 자신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자화상’ 속 그는 그림이 가득한 벽을 등진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반 고흐와 프리다 칼로가 느꼈던 탈출구 없는 상황을 그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습니다. 무릎 위 가지런히 올려놓은 두 손이 당장이라도 화구를 집어들 것이기 때문이죠.
그는 통증과 강박을 거리 둔 채 조용히 바라봅니다. 남편과 나란히 선 자신의 모습을 그린 ‘Walk’ 속 부부는 주눅 들거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고통에 자기 자신을 가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 지나가는 모든 순간은 결국 소중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됨을 말합니다.

“무엇을 받는지에 따라 베푸는 것도 달라집니다. 사랑받으면 사랑으로 되갚게 되죠. 단순하지만 마법 같은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라고 합니다. 뜨개질로 엮인 연인을 그린 ‘사랑의 실’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관계는 가끔 우리가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말합니다.
‘Love as a transforming force that can change everything SPAIN(사랑은 모든 고통(스페인)을 바꿀 수 있는 힘)’. 고통(Pain)과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Spain)을 언어유희로 엮어 관람객에게 농담을 건넵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질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전시장 내 상상 속 마을은 그의 머릿속을 현실로 구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전시는 ‘삶’과 ‘가족’ ‘사랑’을 거쳐 ‘영감’에 다다르며 그의 작품 세계로 안내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관람객에게 그의 작품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과 포근한 기억을 제공합니다. 그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전시는 12월 4일까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계속됩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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