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3월까지 국민연금 재정을 다시 계산해 하반기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연금개혁 플랜’을 내놨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신설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학·공무원·군인연금 등 공적연금 개혁을 추진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식이 될 수밖에 없는 연금개혁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에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5대 구조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로 ‘적정 노후소득 보장 및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연금개혁 추진’을 제시했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약에 포함하면서 강조해온 과제다. 한 달 전인 지난달 16일 열린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핵심 개혁 과제로 연금개혁을 언급하는 등 강한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국민연금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똑같이 내고 덜 받는’ 식인 소득대체율을 기존 60%에서 장기적으로는 40%까지 내리는 연금개혁을 한 이후 15년째 제도 개편이 없었다. 당시 연금개혁으로 국민연금 적자 전환 시점은 2036년에서 2044년으로, 기금 고갈 시점은 2047년에서 2060년으로 늦춰졌다. 하지만 그 사이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심화되며 고갈 시점이 앞당겨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의 적자 전환 시점을 2039년으로, 기금 고갈 시점을 2055년으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연금개혁을 정권의 핵심 개혁 과제로 들고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정작 새 정부 5년간의 경제정책 ‘로드맵’을 담은 경제정책방향에선 연금개혁에 대한 구체적 방향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연금개혁에 대해 정부는 내년 3월까지 국민연금 재정을 계산해 하반기에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립해 공적연금 개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시점이나 구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구조 개편일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인 방향성조차 밝히지 않은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연금개혁은 정치적으로는 다루기를 꺼리는 이슈”라며 “이 같은 거대 이슈는 정권 초기에 빠른 추진이 필요한데 구체적 대안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른 한 축인 기금운용 수익성 제고 대책도 선언적 의미에 그쳤다. 정부는 “기금의 장기적 수익성 제고를 목표로 전문성·책임성·독립성 강화를 위한 기금운용 개선방안 논의를 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내용은 없었다. 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출신 금융사 임원은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은 전주에 있는 기금운용본부가 서울에 사무소라도 차려서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고,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은 정부 입김을 줄이는 것인데 정부 스스로 그 정도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에 대한 청사진 대신 정부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사적연금 활성화였다. 정부는 연금저축 세액공제 대상 납입 한도를 현행 4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퇴직연금을 포함할 경우 700만원에서 900만원까지 높이기로 했다. 세제 혜택을 확대해 개인·퇴직연금 가입률과 수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노인 빈곤 완화를 위해 기초연금도 국민연금 개편과 연계해 월 30만원에서 월 4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건강보험료는 지역가입자 재산공제를 확대한다. 현재 500만~1350만원인 공제액을 5000만원으로 일괄 상향한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국민연금 개혁은 뒤로 미루고, 당장 특정 계층에 현금을 쥐여줄 수 있는 대책만 내놓은 셈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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