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물가 대책이 시행되는 다음달부터 기업들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식품 가격을 인하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관세 인하 품목 확대 등 ‘추가 카드’도 예고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 대책으론 가격 인하가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한다. 관세 부담이 큰 브라질과 멕시코산 돼지고기 수입이 소폭 확대되고, 된장 등 장류 가격이 조금 내려가는 수준의 미미한 효과에 그칠 것으로 관측한다. “공무원들이 실상을 진짜 모르는 것인지, 대책 내놓기에 급급해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미국과 유럽은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돼지고기에 관세가 붙지 않는다. 주요 식품·유통업체는 돼지고기 대부분을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해 이미 면세 혜택을 누릴 만큼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달 말 ‘긴급 민생 안정 대책’을 발표하면서 22.5~25.0%의 관세가 붙는 수입 돼지고기 관세를 올해 말까지 없애면 최대 20%의 원가 인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관세율 25.0%인 멕시코, 브라질산과 9.6%인 캐나다산에 대한 면세로 이들 국가에서 수입이 늘어날 것”이란 게 근거 중 하나다.
하지만 “물류비 등을 감안할 때 남미 등에서 수입할 규모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멕시코와 브라질산 돼지고기 수입 비중은 각각 1%대에 그쳤다.
밀과 밀가루 관세율도 각각 1.8%, 3.0%에서 0%가 된다. 한국의 수입 밀 역시 FTA 체결국인 미국, 호주, 캐나다산이 99%를 차지한다. 올 1분기에 대두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72.2%(블룸버그 국제 곡물가 평균지수 기준), 밀(원맥)은 62.3% 상승했다.
해바라기씨유와 대두유 관세 면제 조치도 제품가 인하로 연결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치킨 프랜차이즈업체 관계자는 “식용유 도매가가 이달 초 80%나 올랐는데 5.0% 관세 인하로 어떻게 치킨값을 내릴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부가세 면제로 원가 9.1% 인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힌 커피, 코코아 원두도 효과를 체감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면세는 로스팅되지 않은 생두를 수입해 가공하지 않고 판매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동서식품, SPC, 이디야커피 등 주요 커피 업체는 생두를 수입해 가공하는 커피 제조업체로, 이미 부가세를 환급받고 있다. 볶은 원두를 수입하는 스타벅스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등 단순 가공 식료품은 부가세 면제 효과가 일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면세율 10.0%가 그대로 가격 인하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구조다. 모든 제조단계별로 붙는 부가세의 성격상 기업이 제품을 만들면서 부담한 부대비용에 대해선 공제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농심과 동원F&B, 대상 등 주요 식품업체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지난 1월보다 10% 안팎 떨어졌다. 이마트, 롯데쇼핑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각각 53.1%, 20.4% 후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를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하겠다”고 밝힌 뒤 정부·여당은 ‘물가와의 전쟁’이라도 펼칠 태세다. 하지만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추진하는 대증요법으로는 백전백패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정호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정부가 기업들에게 인플레이션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는 것"이라며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되, 이에 따른 고통을 잘 견딜 수 있도록 경제적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제품원가를 낮추기 위해 산업인프라 개혁이 중장기적으로 추진돼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품원가를 낮추기 위해선 전력, 물류 등 산업인프라의 경쟁을 도입시키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자원화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매년 식품 공급물량의 35%가 버려지며 이 비용이 모두 소비자가격에 전가된다"며 "음식 쓰레기를 줄이고 남은 식품을 자원화하는 근본적 대응방안도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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