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來 최악 물가부터 잡아야"vs"1900조 가계빚에 이자 폭탄"

입력 2022-06-19 17:48   수정 2022-06-27 15:24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으면서 한·미 기준금리는 연 1.75%(미국 기준금리 상단 기준)로 같아졌다. Fed는 여전히 고강도 긴축을 예고하고 있어 한·미 기준금리 역전은 시간문제다. 한국은행도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정부도 경제 운용의 중심축을 ‘물가 안정’에 두는 분위기다. 하지만 경기 하강 우려 등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자이언트스텝’, ‘점보스텝’까지 거론되는 미국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시각도 많다. 한은의 금리 인상을 둘러싼 4대 쟁점을 살펴봤다.

(1) 물가냐, 경기냐
"14년來 최악 물가부터 잡아야" vs "1900조 가계빚에 이자 폭탄"
기준금리 인상론의 핵심 논리는 고물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연속 3%대였던 물가는 3월(4.1%)과 4월(4.8%) 4%대로 올라선 데 이어 지난달엔 5%를 돌파했다. 한국은행은 당분간 5%대 물가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 체감 물가는 이보다 더 높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물가 못지않게 경기 하강 리스크도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가계부채가 문제로 꼽힌다. 국내 가계부채는 1분기 말 기준 1859조원에 달한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였다. 미국(76.1%), 중국(62.1%), 일본(59.7%) 등 조사 대상 36개국 중 유일하게 100%를 넘었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 가계 이자 부담은 연 3조2000억원 증가하고, 차주당 연평균 16만1000원의 이자를 더 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계 임원은 “가계 부실이 은행 등 금융권 부실로 전이되면 큰 문제”라고 했다.

기업부채도 뇌관이다. 대출과 보증을 포함한 기업신용은 작년 말 기준 2361조원에 달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대출금리 1%포인트 상승 시 가계대출 연체율은 0.1%포인트, 기업대출 연체율은 0.2%포인트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등 코로나19 금융 지원이 오는 9월 종료되면 소상공인 대출 부실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과 가계·기업부채 증가는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정부는 6월 그린북(경제동향)에서 2년3개월 만에 처음으로 ‘경기둔화 우려’란 표현을 썼다. 지난 4월엔 생산·소비·투자지표가 일제히 뒷걸음질치는 ‘트리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선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향후 경기 여건에 맞게 신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박석길 JP모간 금융시장운용부 본부장은 “이미 한은은 가계부채 리스크와 물가 부담 증가 사이에서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통화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 금리인상 효과 있나
높아진 인플레 기대심리 꺾어야 vs 공급망 쇼크라 '인상 약발' 없어
금리 인상으로는 물가 안정이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에 따른 결과인 만큼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금리 인상으론 물가를 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경제 외적인 요인에 의한 공급량 부족이 문제”라며 “전통적인 재정·금융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온다. 지난달 한은 금통위에서 한 위원은 “물가상승세가 가파르긴 하지만 공급 측 요인이 (물가 급등의)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며 “통화정책 대응 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 대응에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금리 인상 여파로 자금조달 비용이 커지면서 투자를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생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 경우 내부 공급이 부족해 물가가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물가상승이 통화 팽창 등 수요 문제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 본부장은 “인플레이션이 어디까지가 공급 요인이고, 어디까지가 수요 요인이라고 설명하긴 힘들다”며 “금리를 올리면 가까운 시일 안에 인플레이션이 잡힐 수 있다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화정책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보는 것도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을 꺾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창용 총재는 후보 시절 “물가 상승 심리가 올라가고 있어 시그널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3%로 2012년 10월(3.3%) 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3) 자본유출 우려 없나
한·미 금리역전 땐 자본유출 vs 韓 기초체력 감안하면 제한적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도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역전 시 급속한 자본 유출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미미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은은 공식적으로 자본 유출은 적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과거 한·미 금리가 역전됐을 때도 자본 유출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번에도 (금리가 역전돼도) 자본 유출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미 금리가 최대 1.0%포인트 역전된 2005년 8월부터 2007년 8월에는 외국인 자본이 1055억달러 순유입됐다. 또 다른 역전기인 2018년 3월부터 2019년 10월에는 187억달러가 순유입됐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자본 유출은 대외 금리차보다는 그 국가가 망할 것 같은 심각한 느낌이 올 때 유의미하게 발생하는 것”이라며 “한국 경제의 성장세 등을 감안하면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더라도 자본 유출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본 유출은 한국 시장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며 “무역수지 적자 발생 등의 여파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신이 높아지면 대규모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은 ‘중국 쇼크’ 가능성과 그 여파를 우려하고 있다. 한·중 간 금융시장은 동조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미 금리 차가 역전된 시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0%대를 기록할 정도로 높았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 4월 기준금리를 연 1.5%로 인상하면서 “과거 중국에서 금융 불안이 심화된 기간에 국내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유출된 사례가 있다”며 “중국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다면 자본 유출 압력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4) 고환율 용인해야 하나
금리 놔두면 환율 급등→高물가 vs 국제수지 방어 우선…日도 엔低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야기할 환율 변동 여파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져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면 이는 다시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물가가 국제 원자재 가격뿐 아니라 환율의 영향도 크게 받고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발표한 ‘환율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환율이 안정적이었다면 올해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8%에서 3.1%로 낮아질 수 있었을 것으로 관측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5일 1290원50전에 거래를 마치며 2009년 7월 14일(1293원) 이후 약 13년 만에 처음으로 1290원대를 기록했다. 17일에는 1287원30전으로 마감했다. 외환시장에서 1300원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있다. 원·달러 환율 1300원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사태 초기에나 보던 환율이다. 지난해 평균 원·달러 환율은 1144원이었다.

일각에서는 고환율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이 높으면 물가는 오르지만 국제수지 방어와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과정”이라며 “지금 환율은 종합적으로 볼 때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개선 효과에 대해서는 반론도 나온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역수지 영향은 원·엔 환율이 중요하다”며 “경쟁국인 일본의 엔저가 심화하고 있는데도 한국 무역수지에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가치는 지난 13일 장중 한때 달러당 135.13엔까지 떨어지며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은행은 엔화 가치 급락에도 불구하고 17일 “환율을 목표로 정책을 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했다.

임도원/황정환/정의진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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