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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독일 회화 작가 다니엘 리히터(60·사진)의 그림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감한 네온사인의 이미지와 다채로운 색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사회의 문제의식, 비주류의 고독과 고민이 숨어있다.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 '나의 미치광이 이웃(My Lunatic Neigbar)'을 여는 다니엘 리히터는 21일 영상인터뷰에서 "예술은 예술로서 가치를 지니지만 그 사회적 역할은 당대의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규정지어진다"면서 "자유로운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지점을 찾기 위해 지난 10~12년 간은 정치사회적 이슈를 창작의 영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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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미술사에서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 개념미술이 꽃을 피우던 시기다. 리히터는이 같은 사조에 휘말리지 않고 회화 작업에 몰두했다. 단순 추상 회화 같았던 그의 작업에 서사가 덧입혀지며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났다.
"시각예술가에게 회화는 '척추'와도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뜻이죠. 작품이 벽에 걸리는 순간 그린 작가의 피부색 등 외모는 사라집니다. 순수한 그림 그 자체로 관람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정치사회적 이슈를 과감하게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는 그에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일이 시각예술가로 접어들게 된 계기였다. 당시 사회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도 변화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리히터가 1990년대엔 추상회화의 자유로움을 실험했다면, 2000년대 들어선 사회적 이슈를 환각적이면서도 거친 화풍으로 그려냈다. 역사화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주제나 인물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열린 결말'을 던져 보는 이들에게 상상의 영역을 남긴다.
이번 전시에 걸린 '피녹스(2000)'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동시에 벌어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보기에 따라 베를린 장벽 붕괴의 메시지를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형광색을 덧입히고 사람들의 형체를 뭉개 멀리서 보면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파티 장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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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한 공원을 배경으로 19세기 프랑스 회화 기법을 활용한 '투아누스(2000)' 역시 여러 사람이 등장해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약 중독자들을 단속하는 경찰의 모습을 신문 사진을 기반으로 그렸다. 작가의 눈에는 폭동과 축제, 전쟁과 파티의 모습이 멀리서 봤을 때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예술은 기존의 상식과 지식을 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도 이웃의 영어 철자를 neighbor가 아닌 neighbar로 변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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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는 강렬한 색과 선으로 인물의 행동을 단순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강한 실루엣과 원색의 표현이 인상적인 '눈물과 침(2021)'은 1차 세계대전 때 다리 잃은 두 소년 병사가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엽서 사진을 참조했다.
펑크 스타일의 화려한 나비처럼 역동적 존재로 읽히는 새로운 실험이다. 그는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아테네오 베네토에서 대규모 신작 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장은 과거 사형수들을 교화했던 장소로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이 교차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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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2015년 이후 추상성이 가아게 드러나는 회화로 또다시 변화를 시도했다. 인체의 형상에 집중하면서 나이프, 붓 등을 자유롭게 활용한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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