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국뽕’ 너무 싫다.”
안녕, 내 친구 K야. 21일 오후 4시10분 너가 카카오톡 동창회 채팅방에 남긴 글이야. 애국심과 필로폰의 비속어를 합쳐 만든 단어인 ‘국뽕’을 누리호 발사 영상과 함께 올린 너는 이어 “세금이 우주로 날아가는구나”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지. 미국이 1960년대부터 성공한 것을 이제야 하면서 호들갑이라고. 사실 비슷한 뉴스 댓글을 여러 번 봤어. “혈세 낭비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더 지어라, 세금 깎아줘라.”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지난 2박4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보고 들은거야. 발사 당일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MDC)에는 분홍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연구진이 줄지어 앉아 있었어. 대부분 머리가 희끗(또는 벗겨졌지만 이건 모른 척 해주자. 너도 나도 위험하잖아)했지. 1990년대부터 30년 넘게 우리 기술로 로켓을 만들어 보겠다고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야.
발사를 앞둔 이들의 자세는 한결 같았어. 팔꿈치를 책상에 올리고 두 손을 모아 꽉 쥔 뒤 이마를 가져다 댔어. 발사 1분전. 두 눈을 감았지. 발사 10초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고. 누리호는 마침내 우주로 향했어.
관제방송은 “비행정상”이라며 100㎞ 단위로 누리호의 비행 상태를 알려줬어. 4시14분34초 “3단엔진 정지확인, 목표궤도 도달확인, 성능검증위성 분리확인” 방송과 함께 박수, 함성 소리가 들렸어. 머리가 희끗한(또는 벗겨진) 연구원들은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어. 서로 껴안고, 등을 두드렸지. 환하게 웃으며 사진도 찍었어. 알 수 없는 숫자가 가득 적힌 A4 종이를 서로의 책상에 살짝 던지며 아이들처럼 좋아했지. 이 모든 순간을 보고 들은 입장에서 ‘국뽕’ 이라는 한 단어로 이들이 지내 온 수십 년의 시간을 폄하해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면 누리호가 ‘국뽕’이 아니고 뭐냐고? 글쎄 잘 모르지만 0.001% 이하 정도는 피로회복제 ‘박카스’로 이뤄졌지 않을까? 연구원들의 책상에는 모두 박카스가 한 병씩 있더라고. K야, 누리호 발사 순간에 대해 그리 차가운 반응을 보이기에 앞서 박카스라도 한 상자 나로우주센터에 보내고 응원하는 건 어떨까.
혹시 또 아니, 몇 년 뒤 너가 좋아하는 손흥민 선수가 영국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이 또 되는 ‘국뽕’ 차오르는 순간을 누리호가 올린 위성을 통한 생중계로 볼 수 있을지. 장마 시작했네. 빗길 운전 조심하고 다음 주 동창회에서 보자. 내 친구 K야.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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