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인하는 정부가 결정할 부분이지만 기업에 이윤 축소를 강요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처럼 유가 변동성이 높을 때는 관련 리스크를 기업들이 떠안는다”며 “당장 미래에 유가가 떨어지면 지금 구입한 원유 가격은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특정 시점에 이익이 났으니 환원하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요구”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압박이 자칫 정유사들의 손실로 이어져 정유 설비 투자가 줄어들고, 그만큼 휘발유값이 오르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올해 영업이익이 불어난 것은 국제 유가가 뜀박질하며 회계상 원유 재고 평가이익이 증가한 것으로 실제 수익은 아니다”며 “2020년 국제 유가 폭락으로 정유사들이 5조3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이익”이라고 말했다.
23일 정유사와 은행을 압박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판을 의식한 듯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통 분담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며 “고통 분담에 동참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정부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가격 통제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대출 이자 때리고, 휘발유값 때리는 논리로 가면 계란값, 소고기값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두더지 게임의 구멍이 수십만 개인 것과 같은 상황으로 가격 통제는 합당한 방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도 23일 “이미 몇몇 은행에서 부동산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낮추고 예금 금리를 높인 상품들이 나왔다”며 “금융업계 차원에서 예대금리 격차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은행을 압박해 예금 금리를 낮출 여지가 충분하다는 인식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 등의 압박으로 그만큼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사상 최대 가계 부채에 금리 인상, 경기 하강이 겹치며 부실 대출이 급속히 증가할 경우 대응 여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경제위기대응 특위를 22일 발족해 기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전망이다. 원내대표 시절 임대차 3법을 강행 처리해 전셋값 급등을 부른 바 있는 김태년 의원이 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경제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시장 개입을 강조해온 민주당은 차치하고, 여당의 판매 가격 인하 압박이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자유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묻고 싶다”며 “시장의 가장 중요한 신호인 가격을 모든 영역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경목/김익환/맹진규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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