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업들의 곳간이 빠르게 비고 있다. 신약 개발사 4곳 가운데 1곳은 연구개발(R&D)만으로도 1년 뒤 보유현금이 모두 소진될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등에 따른 주가 하락, 높아진 코스닥 상장 문턱 등으로 바이오 투자 유치가 사실상 올스톱돼 바이오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글로벌 임상이 위축되면서 신약 개발에 차질이 빚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별로 보유현금 편차가 컸다. 조사 대상 가운데 14곳은 추가 자금 조달이 없으면 R&D 비용 지출만으로 내년 보유현금이 바닥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평균 R&D 지출과 올 1분기 현금 자산을 비교한 결과다.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까지 고려하면 자금 고갈 시점은 더 당겨질 전망이다.
면역항암제를 개발 중인 A사는 보유현금이 362억원이어서 연평균 R&D 비용 376억원을 집행하려면 14억원이 모자란다. 유전자치료제 개발사 B사와 세포치료제 개발사 C사도 정상적으로 신약 개발을 계속하면 올 연말에 20억~30억원의 현금만 남는다.
바이오기업들의 현금 확보 전쟁도 시작됐다. 최대주주 자리를 내주고서라도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주가 하락으로 주식담보대출이 막힌 탓에 최대주주가 유상증자 참여를 위해 보유 지분을 파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7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유틸렉스의 최대주주 권병세 대표는 지분 일부(5.67%)를 매각한 자금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조달 시장 분위기가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최대한 자금을 확보해두자는 의도”라고 했다.
비상장 바이오벤처는 사정이 더 안 좋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거의 유일한 자금줄인 벤처캐피털 투자가 꽁꽁 얼어붙었다. IPO는 비상장 회사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기술특례제도를 통해 상장한 바이오벤처는 2020년 17곳이었는데, 작년엔 9곳으로 줄었다. 올 상반기에는 3곳에 그쳤다. 벤처캐피털 대표는 “요즘은 투자를 요청하는 전화만 하루 50통 넘게 받는다”면서도 “투자 회수가 불투명하다 보니 바이오 신약 벤처에 대한 투자는 미루고 있다”고 했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임상 개발 파이프라인을 늘렸는데, 이제는 ‘돈 먹는 하마’가 됐다”며 “우선순위를 정해 파이프라인 구조조정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재영/이선아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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