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박수근 작품 뒷면의 '반도화랑 스티커'

입력 2022-06-24 17:30   수정 2022-06-25 00:06


1956년 서울 소공동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 자리) 1층 로비에 ‘반도화랑’이 문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상업 갤러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김종하 백영수 권옥연 윤명로 등 수많은 원로 화가가 이곳을 거쳐갔다. 도상봉·이대원 화백 등이 화랑을 경영했고,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이곳에서 일하다가 독립해 현대화랑을 세웠다. 1960년대 한국 미술시장 형성에 크게 기여한 반도화랑은 1974년 롯데가 반도호텔을 인수하면서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를 모았던 그림은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이었다. 그의 그림을 전시했다 하면 하루에도 수십 점씩 팔려나갔다. 한국적인 정서가 짙고 화풍이 독창적이란 게 구매자들의 평가였다. 특히 미국 외교관 부인들이 박수근의 열렬한 팬이었다. 이들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박수근 작품이 200점을 넘는다.

박수근은 반도화랑의 전속 작가나 다름없었다. 반도화랑에서 첫 전시(1956년)를 열기 전까지 그는 미군 PX에서 초상화 등을 그려주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보통학교만 나와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를 미술계가 외면했기 때문이다. 반도화랑 전시가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비로소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가 한국적 정취를 담은 소재에 천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요 고객이었던 외국인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게 미술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오는 28일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되는 박수근의 ‘유동’(추정가 5억~8억원)은 이 시기 반도화랑을 통해 팔려나간 작품이다. 1960년대 해외 소장가가 사들여 국내에서 보관하다가 60여 년 만에 외부로 나왔다.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네 명이 모여 앉아 노는 모습이 화폭에 담겼다. 작가 특유의 ‘시골 담벼락 같은’ 질감이 인상적이다. 뒷면에는 반도화랑이 판매한 작품 뒤쪽에 붙이던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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