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천국’이라 불리는 호주의 금융도시 멜버른. 이곳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은 자국의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가 강했다. 은퇴를 앞둔 사우던 씨(60)는 “노령연금에 노후를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슈퍼펀드’ 덕분”이라고 말했다.
슈퍼펀드는 호주 퇴직연금 ‘슈퍼애뉴에이션’을 줄인 말이다. 2320만 명의 호주 근로자를 떠받치는 사회 안전망이지만, 세금이 한 푼도 투입되지 않는다. 호주 근로자들의 월급에서 매달 10%씩 납부되는 기여금이 원천이다. 기금 규모는 국민연금의 세 배가 넘는 약 3093조원(3조4415억호주달러)이다.
지난 10년간 호주 퇴직연금은 연평균 8.5% 수익률을 기록했다. 호주 국민이 별도의 재테크 없이도 은퇴할 때 목돈을 마련하는 비결이다. 한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연평균 1.5% 내외에 불과하다.
호주 디폴트옵션의 특징은 주식과 부동산 등 ‘성장형 자산’ 비중이 70%에 달한다는 것이다. 평균적인 세부 구성은 해외주식 27%, 국내주식 24%, 부동산 9%, 인프라 7%, 비상장주식 5% 등이다. 예금 등 원금보장형 상품 투자 비중이 90%에 달하는 한국 퇴직연금과 대비된다.
자카리 메이 IFM인베스터스 전무는 “장기적으로 성장형 자산의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호주뿐 아니라 캐나다 네덜란드 덴마크 등 다른 연금 선진국에서도 증명됐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은 투자기간이 30~40년에 이르기 때문에 원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이 성장형 자산을 쫓아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가입자의 믿음은 통계로 확인된다. 리서치업체 CT그룹이 성인 2043명을 설문한 결과 퇴직연금 수익률에 만족한다는 응답자가 56%였다. 불만족한다는 답변은 8%에 그쳤다. 정부가 보험료율을 기존 10%에서 12%까지 인상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62%가 동의한다고 밝혔다.
닉 셰리 초대 퇴직연금부 장관은 “1992년 제도 도입 당시 퇴직연금 제도에 대한 여론이 반반으로 갈렸지만, 가입자들이 수익이 나는 것을 확인하면서 찬성 의견이 70~80%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에 추가 납부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비중도 81%에 달했다. 호주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을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호주 근로자들은 연간 2만7500호주달러(약 2500만원)까지 퇴직연금 계좌에 납입할 수 있다. 예컨대 연봉 1억원의 근로자는 1000만원을 의무적으로 납부한 이후 추가로 1500만원을 넣을 수 있다. 납부금이 소득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소득세가 대폭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작년에는 최하위 펀드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제도를 시행했다. 2년 연속 시장 수익률을 밑도는 펀드는 투자자 모집이 금지된다. 제도 시행 2년이 되는 올해 말부터 시장에서 쫓겨나는 펀드가 나온다.
연금 사업자에게는 잔인하지만 가입자에게는 좋은 제도다. 운용사들은 3000조원이 넘는 연금시장을 잡기 위해 최고의 펀드매니저를 연금펀드에 투입한다. 호주의 모든 근로자가 최상위 금융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멜버른=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