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적잖은 정유업계 임직원들이 ‘주유소 철수론’을 꺼낸다.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경유 판매 실적은 최근 수년 동안 ‘손익 분기점’을 오갔다. 한 정유사 임원은 “기름값 인하 압박 탓에 국내 휘발유·경유에 추가 마진(이윤)을 얹지 않고 주유소에 공급하고 있다”며 “한국같이 휘발유·경유 가격이 치솟은 해외로 전량 수출하자는 내부의 목소리도 많다”고 말했다. ‘정유업체가 국내에서 휘발유·경유를 비싸게 팔아 나 홀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항변이다.
정치권은 이 같은 하소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름값 상승의 책임을 기업에 돌린 채 성난 민심을 잠재우는 데만 급급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21일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23일에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정부는 세수 부족 우려에도 유류세 인하 폭을 최대한 늘렸다”며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를 불리려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정치권의 질타에 정부까지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합동점검반을 구성했다. 점검반은 정유업계에서 기름값을 놓고 불공정 행위가 이뤄졌는지 점검하기로 했다. “기름값은 모르지만 기업 군기는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른바 ‘횡재세(windfall tax·초과이윤세)’ 논의도 불붙었다.
정유업계는 안팎의 질타에 표면적으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협조 의지만 드러냈다. 대한석유협회 한국석유유통협회 한국주유소협회 등은 다음달 기름값에 유류세 인하분을 즉각 반영할 계획이라고 27일 발표했다. 정부가 다음달 1일부터 유류세 인하율을 30%에서 37%로 높이기로 결정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인위적으로 기름값을 통제하고 정유업계에 으름장을 놓는 것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영업이익이 불어날수록 외부의 질타를 받고 공격을 받으면 정유업계 투자·이윤추구 심리가 꺾인다. 정유사가 설비 가동률을 낮추거나 휘발유·경유의 수출 비중을 높일 우려가 높다. 그렇게 되면 국내 기름값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에너지업계에 가하는 전 세계 정부 압박에 대해 “기업들의 생존·투자 의지를 꺾고 에너지 공급망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의 경고가 결코 허언이 아니어서 더욱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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