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이면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지 정확히 3년을 채운다. 수출규제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이 핵심 소재의 국산화에 나섰지만 일본 의존도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일본은 2019년 7월1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실시했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판결한데 대한 보복조치로 해석됐다.
수출 규제 이후 한국에서는 대대적인 일본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한국 정부는 2조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해 반도체 부품·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지난달 9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의한 위기를 전 국민이 단결해 극복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탈(脫) 일본'은 별다른 진척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규제 3개 품목 가운데 불화수소의 수입은 2019년 7월을 기준으로 급감했다. 2020년 수입 규모는 2018년에 비해 86% 줄었다.
하지만 2021년은 1년 전보다 34% 늘었고, 올해 1~4월 수입 규모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또다시 30% 증가하는 등 회복세가 뚜렷했다. 나머지 규제 품목 가운데 하나인 포토레지스트는 매년 두자릿수의 수입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불화폴리이미드의 수입 규모도 한창 때에 비해 미세하게 줄어든데 그쳤다. 일본 소재 기업 관계자는 "불화수소를 제외하면 별다른 영향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품목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은 더욱 늘었다. 2021년 수입액은 8500억엔(약 8조767억원)으로 1년 만에 44% 증가했다. 그 결과 반도체 관련 전 품목에서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건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대체재를 도입하려면 반도체 생산라인을 정지시켜야 하기 때문에 한국 반도체 업체들도 국산 소재를 추가 도입하는데 신중하다"고 설명했다.
불화수소 국산화에 나선 솔브레인의 모회사 주식은 2019년 7월 이후 주가가 급등해 한때 7만원을 넘었다. 국산화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반영하듯 최근에는 2만원선이 무너지면서 6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한국 기업에 불필요한 불신감을 심어줬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장 가동이 멈출 위험성을 통감한 만큼 결과적으로 일본산을 대체할 공급자를 육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연간 매출은 총 13조엔으로 일본 최대 반도체 업체인 기오시아홀딩스의 8배 규모다. 상당수 일본 공급업체들에 삼성전자는 최대 고객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장기적으로 국산화를 진행하면 일본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경제정책에는 '탈일본', '국산화' 같은 표현이 빠져 있다. 하지만 "전 정권의 반도체 소재 및 장비 국산화를 중단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 내에서도 경제안보 측면에서 부품 국산화는 필요하다는 의견"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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