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한 총리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정책 철학이 180도 바뀐 상황에서 전임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 이끌던 기관장들이 버티고 있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홍 원장만 하더라도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리를 들은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설계자다. 그런 그가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싱크탱크 수장을 계속 맡는 것은 모순이다. 대표적 반(反)원전주의자인 김제남 이사장이 탈원전 폐기를 주창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현희·한상혁 위원장 사퇴 주장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독립성이 보장된 기관의 장이라고 항변하나 이들이 지난 정부에서 이런 원칙에 맞게 직무를 수행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전 위원장은 민주당 의원을 지내 임명 당시부터 부적격 논란을 빚은 데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고인의 명예’를 거론하며 소극적으로 대응해 질타를 받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출신인 한 위원장 역시 지난 정부 친여 방송의 편파 보도에 눈감았다는 비판을 받는 등 중립성 의심을 샀다. 임기 보장 주장 이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게 상식에 맞다. 계속 버티면 뻔뻔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이참에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을 줄이기 위한 개선책 마련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현재 공공기관 370곳 중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곳은 69%(256곳)에 달한다. 특정인을 물러나게 한다고 해도 신·구 정권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파를 떠나 고도의 전문성과 업무 지속성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미국식 ‘플럼북’과 같이 정권이 바뀌면 자동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두뇌와 손발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효율적 정책 집행이 이뤄질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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