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7월, 21세 한국인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세계적 권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공동 2위를 차지했다. 1위와 다른 공동 2위, 3위 수상자는 모두 클래식 강국이자 주최국인 러시아인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세계 음악계의 ‘변방’ 한국에서 온 피아니스트의 입상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정명훈은 러시아에서 귀국하자마자 서울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했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국위를 선양했다’며 훈장을 받았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불과 563달러였다.
1인당 GDP가 수백달러에 머물던 시기에 ‘K클래식’의 토대를 만든 한국의 1세대 연주자들은 대부분 개인의 천재성에 의존했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린 이들은 대부분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배웠다. 국내에선 음악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1971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정명화와 정명훈을 일컫는 ‘정 트리오’ 남매가 대표적이다. 피아니스트 김대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도 1982년 서울음대 재학 도중 미국 줄리아드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정명훈의 역사적인 ‘귀국 카퍼레이드’ 이후 20년이 흐른 1994년 1인당 GDP가 처음으로 1만달러대에 진입했다. 1990년대 자녀에게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를 가르치는 부모가 늘어나면서 클래식 꿈나무들이 부쩍 많아졌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1세대 연주자들이 귀국해 국내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서 2세대 제자들을 길러냈다. 1인당 GDP 2만달러를 찍은 2006년(2만1727달러) 한예종 3학년에 다니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세계적 권위의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아시아 최초이자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한예종 동문인 피아니스트 손열음도 2009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각각 2위를 차지하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날렸다.
2017년(3만1605달러) 이후 1인당 GDP가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으로 자리 잡은 이후 세계 무대에서 K클래식의 깃발을 꽂은 3세대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경제력의 뒷받침으로 국내 공공·민간의 예술 교육 수준이 무르익으면서 예술 영재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키우는 시스템이 활성화하고 공연장 인프라 등이 갖춰지면서다.
3만달러를 향해 달려가던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파란을 일으켰고, 2017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5년 뒤 임윤찬이 같은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면서 두 대회 연속 한국 피아니스트가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낳았다. 유학 경험 없이 국내 음악교육만으로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을 이뤄낸 피아니스트 문지영(2015년)을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양인모, 피아니스트 박재홍, 첼리스트 최하영 등 K클래식을 이끄는 젊은 연주자들의 활약상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송주호 음악평론가는 “소득이 늘어나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음악이 좋아서 시작한 어린 학생들이 늘어난 게 K클래식을 키우는 체력이 됐다”며 “지금까진 피아노와 현악기 중심으로 성과를 내왔지만 머지않아 관악기, 타악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2의 정명훈’ ‘제2의 조성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연수/조동균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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