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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베 집권 9년간 임금은 기대와 달리 움직였다. 일본의 평균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일본 경제도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두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고 엔화 가치는 최근 24년 내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한때 세계 2위였던 1인당 GDP는 지난해 28위로 추락했다.
물가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경제 수장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재무관료 출신으로 경제 생리를 잘 알고 있는 그가 할 말은 아니다. 더구나 노동계 간담회도 아니고 경총에서라면 더욱 부적절하다. 실업률과 임금(물가)이 반비례 관계(필립스곡선)라는 건 경제학의 기본이다. 임금은 올리란다고 올리고 내리란다고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 생산성에 따라 노사 자율로 정해져야 한다.
임금을 무턱대고 올리는 기업도 없다. 추 부총리가 콕 찍은 ‘IT’와 일부 ‘대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난리인 곳이다. 전문 인력은 급여가 기대에 못 미치면 다른 회사로, 심지어 해외로 떠난다. 소위 개발자들이 그렇고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인력 상황이 그렇다.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카카오 등이 10% 안팎의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기업마다 특수한 사정도 있다. 대한항공은 총액 기준 임금을 10% 올리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021년 임금을 동결했다가 3년 만의 인상이다. 당장 “이제 좀 살만해 돈 좀 더 준다는데 그걸 말리냐”는 얘기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언급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강조했다. 한 달여 만에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관치의 기운은 정부 국정운영 철학을 의심케 한다. 물가를 잡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규제 철폐다. 최근 만난 한 기업 총수는 “윤 대통령 말마따나 그는 정치 신인이고 부채도 없는데, 공무원은 여전히 ‘관치 습성’을 못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이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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