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정책은 왜 반복될까. 많은 시민이 ‘혈세(血稅)’라는 말도 자주 쓰는데, 터무니없는 정부 예산 지출은 왜 근절되지 않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정책과 예산관리에 대한 평가·분석이 부족한 게 큰 요인일 것이다. 새롭거나 시험적인 정책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후 평가, 논쟁이 많은 논란거리 대형 예산 집행에 대한 효과 분석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다. 책임 문제를 의식한 공무원 담당자와 정권차원의 회피도 물론 문제다. 그에 더해 철저한 사후관리를 하지 못하는 행정체계의 결점이 적지 않다.
두 가지 정책은 그런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먼저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이른바 안심소득 시범사업을 보자. 다분히 실험적 복지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제와 대비되는 것이다. 7월 11일 첫 지급을 시작해 5년 간 지급되는 오세훈 시장의 안심소득은 간단히 말해 기존의 현금성 복지를 통폐합하고 그 바탕에서 시작하는 선별적 복지 제도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소득보장의 실험’이기도 하다.
주목되는 것은 정책의 효과검증을 서울시가 하겠다는 대목이다. 소요 재원조달 문제를 비롯해 풀어야할 숙제가 적지 않지만, 적어도 이것만으로도 이 정책은 최소한의 신뢰를 받게 됐다.
시범적으로 시행되는 서울시의 안심소득제는 소득이 없는 1인 가구에 최대 82만원 6550원을 지급한다. 시범 시행인 만큼 일단 500가구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선정된 가구는 3년간 일정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받는데, 정책 효과 검증은 그 이후 2년 간 진행된다.
중위소득 85% 이하, 재산 3억2600만원 미만의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일정 공식에 따라 산정된 금액을 시에서 지원한다. 안심소득 지원대상자로 선정되면 기존에 받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는 받지 못한다. 기초연금·청년수당·청년월세도 해당 금액만큼 안심소득에서 빠진다. 올해 시범사업 예산은 35억원으로, 5년간 224억원의 시 예산이 들어간다고 한다. 서울시는 지난 3년의 소득·재산조사와 통계학 기반의 무작위 표본 추출을 통해 지급 대상을 최종 확정했다. 시범사업의 효과 정도를 검증하기 위해 비교집단 1023가구가 선정됐다. 2023년에는 기준 중위소득 50~85%를 대상으로 300가구를 추가 선정할 계획이다. 이와 병행해 기존의 시 복지 체계를 통폐합해 비효율성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시는 안심소득 지급 기간인 3년을 포함해 5년 동안 총 8회의 정기조사를 통해 지원집단과 비교집단을 조사할 계획이다. 일과 고용, 가계 관리, 교육훈련, 주거환경, 건강생활, 가족 사회, 삶의 태도 등 7개 분야를 중심으로 안심소득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할 계획이다. 기존의 복지급여와 다른 소득보장제도에 대한 비교연구도 하겠다고 한다.
정책 효과 분석과 관련한 또 다른 하나의 반면교사 거리가 있다. 이른바 ‘공공일자리’라는 ‘관제(官製)고용’에 대한 정부의 뒤늦은 반성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기획재정부는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만큼 민간의 고용여력 제고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을 밝힌 적 있다. 뒤늦었지만 백번 맞다. 정색을 한 정부 공식발표는 아니었지만, 고용통계에 대한 발표(보도) 자료의 취지가 그러했다. 담당 실무자도 이런 판단이 정상화의 길이라며 비공식적 자리에서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때의 기재부 스탠스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었다. 정부 정책이 좌우보혁 정권에 따라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이 변하더라도 스윙의 정도가 합리적 예측 선 안에 있어야 하고, 관계 대상자들이 수용할 수준일 필요가 있다. 그게 선진 국가, 민주 정부다. 앞서가는 정치다.
현실적으로는, 방법론에선 정책의 평가 검증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진다. 특히 재정지출에 대한 효과 분석이 없었던 게 문제다. 정책과 재정지출에 대한 객관적·과학적·합리적·중립적 평가가 있었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오류는 지속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령 탈원전 정책에 있어서도 이런 결정에 따른 긍정의 효과는 무엇이며, 경제적 손실 등 수반되는 비용이 얼마나 된다는 점을 개략적으로라도 계산했다면 터무니없는 자해적 행위는 계속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책이란 미명하게 그런 일이 너무 많고 잦았다. 이런 것을 바로 잡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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