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원고료 제자리…'넥스트 단색화' 제시할 평론가들이 없다"

입력 2022-07-06 17:58   수정 2022-07-07 10:14

“1980년대 짜장면 값이 500원이던 시절 전시 서문을 써주면 20만원을 받았습니다. 지난 40년간 짜장면 값은 열 배 넘게 올랐는데, 원고료는 제자리예요. 이러니 평론가가 먹고 살 수 없죠. ‘단색화’처럼 세계를 뒤흔드는 ‘국가대표 미술 담론’이 나오려면 평론가 생태계가 제대로 돼 있어야 합니다.”(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

회화와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발레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문화의 꽃’을 한국인이 활짝 피우고 있지만 아직 한국을 순수예술 강국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다. 유명한 화가나 콩쿠르 우승자 등 ‘빛나는 곳’에만 관심과 지원이 쏠리는 탓에 지휘, 작곡 등 창작 영역(음악)이나 평론(미술) 등 예술 생태계가 성숙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대표적인 영역이 미술 평론이다. 2014년부터 세계 미술시장에서 단색화가 각광받기 시작한 데는 개별 작가의 작품을 단색화라는 화풍으로 한데 묶고 예술사적 의의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 평론가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단색화 이후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한국 미술 담론은 없다시피하다.

원인으로는 터무니없이 낮은 ‘글값’이 꼽힌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한국평론가협회장)은 “평론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평론가들이 학교나 미술관 등에 취업했고, 이로 인해 전문적이고 야성 넘치는 평론이 급감했다”고 말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좋은 한국 작가는 지금도 많다”며 “작가들을 묶어 해외에 세일즈할 평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한국식 음악 엘리트 교육은 ‘모범생’만 양산하고 있다는 평가다. 콩쿠르 성적에 매달리다 보니 ‘찍어낸 듯한’ 연주, 모범적이고 표준적인 연주만 한다는 지적이다. 남자 연주자들은 특히 병역 특례를 받기 위해 콩쿠르 성적에 목을 매다가 ‘반짝’ 수상하고 사라지는 사례도 적잖다.

개성이나 창의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곡이나 지휘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한국인이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음악계 관계자는 “마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처럼 콩쿠르 성적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예술가들도 성적을 높이는 데 집중하게 된다”며 “국제 콩쿠르 입상 덕에 K클래식이 세계에 알려졌으니 이제 ‘넥스트 콩쿠르’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학에서는 ‘등단’으로 대표되는 순문학 우대 풍조가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이미예, 황보름 등 최근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등단 절차를 밟지 않았다. 올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도 등단 이력이 없다. 그럼에도 주요 문단 행사나 문학상은 여전히 등단 여부부터 따진다. 정 작가의 《저주토끼》를 영어로 옮긴 번역가 안톤 허는 “그간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은 특정한 기성세대의 순문학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며 “이번 부커상 최종 후보 선정은 한국 장르문학의 문학성이 충분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성수영/신연수/구은서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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