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씁쓸한 은행 대출금리 인하

입력 2022-07-10 17:05   수정 2022-07-11 00:15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입을 맞춘 듯 “은행의 ‘이자 장사’가 지나치다”고 경고한 이후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금리 인하에 나섰다. 신한은행이 가장 먼저 총대를 멨다. 6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연 5%를 넘는 고객에 대해 앞으로 1년간 금리를 연 5%로 동결하겠다고 했다. 이를 초과하는 이자는 신한은행이 떠안기로 했다.

우리·하나·농협은행도 곧바로 금리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은행은 주담대 최고금리를 연 7%대에서 연 5%대로 1%포인트 넘게 낮췄다. 하나은행은 연 7% 이상 금리로 대출받은 개인사업자의 금리를 최대 1%포인트 깎아주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금리 상한 주담대의 가산금리를 최대 0.2%포인트 내렸다. 5대 은행 중 아직까지 동참하지 않은 국민은행은 앞선 네 은행을 뛰어넘는 규모의 대출금리 인하를 준비 중이며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 상승기에 대출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항변해온 은행들이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압박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강도 높은 압박에 백기 든 은행
하지만 정작 금융 소비자들은 은행들의 금리 인하 행렬을 썩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출받은 대부분 사람에겐 혜택이 거의 없어서다. 은행에서 주담대를 이용하고 있는 이들 중 연 5% 이자를 무는 고객은 많지 않다. 주담대 금리 상단을 적용받는 차주도 드물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발표만 요란할 뿐 ‘생색내기’란 지적이 나온다. 금리를 내린 은행들은 몇 명의 고객이 적용 대상이고 이들이 받는 금리 감면 혜택은 얼마인지, 은행이 지는 부담은 어느 정도인지 등 상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은행들이 납작 엎드렸지만 금융당국은 만족하지 않은 모습이다. 금융위원회는 ‘금리정보 공시제도 개선 방안’을 통해 은행들을 한층 더 압박하고 나섰다. 다음달부터 신규 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비교 공시하도록 하고, 공시 주기도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하도록 했다.
대출 원가까지 공개해야 할 판
대출금리 산정체계도 손볼 것을 주문했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 뒤 우대금리를 제외하고 정해진다. 기준금리는 시장금리 영향을 받지만 가산금리는 업무 원가, 리스크·유동성·신용 프리미엄, 자본비용, 법적비용, 목표이익률 등 은행마다 제각각 책정하면서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당국은 대출 종류와 규모 등에 따라 다른 원가를 적용하도록 하고, 리스크 프리미엄(조달금리-대출금리)을 정할 때 조달금리 지표가 과다 산정되지 않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은행들은 이를 사실상 대출금리 산정 원가를 공개하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 분야의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첫 금융위원장으로 지명된 김주현 후보자도 “금융이 독자 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금융 규제를 과감히 쇄신하겠다”고 했다. 그는 특히 금산분리 완화 추진 가능성도 내비쳤다. 일반 기업의 금융업 진출과 금융회사의 비금융 사업 진출을 제한하는 금산분리는 대표적인 금융 규제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이런 약속은 공염불이 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어느 정권보다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겠다고 약속한 현 정부가 시장에 역행하는 대책을 더 많이 내놓고 있다”며 “은행을 산업적으로 키우기 위한 인식이나 제도 개선은 윤 정부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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