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항복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당장은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일자리를 잃게 돼 살길이 막막해진다. 싸우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였다. 신용을 잃으면 자식도 용병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끝까지 싸웠고 기꺼이 죽었다. 물론 이런 군대를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종렬로 긴 창(파이크)을 앞세워 진격하는 스위스 용병은 무적이었다.
그러나 변화가 없다는 게 한계였다. 결국 자신들의 전술을 그대로 모방한 독일 용병(란츠크네흐트)이 등장했다. 스위스 용병은 1512년 이들을 간단히 격파하지만, 10년 뒤 재대전에서는 참패한다. 독일 용병은 스페인 화포 등 신기술을 받아들였지만, 스위스 용병은 그대로였다. 포병의 등장은 개인의 용맹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유엔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5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가진 거부권은 힘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안보리 결정은 유엔 헌장에 의거해 회원국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성을 지닌다. 하지만 상임이사국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안보리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거부권을 규정한 유엔 헌장을 개정할 때도 거부권은 적용된다. 즉 거부권은 영원히 사라질 수 없다.
세계사를 보면 평화나 중립처럼 허무한 말이 없다. 힘이 없으면 힘 있는 쪽에 붙기라도 해야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나선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체제 언론인 암살 문제로 거리를 둬왔던 사우디아라비아를 13일 방문한다. 세계 최강대국에도 정의보다 유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 외교의 최근 행보는 빠르고 또 선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으로 우리는 미국 쪽에 선다는 점을 다시 천명했다. 한·미·일 정상이 군사안보협력 재개 원칙론에 합의한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 외교가 막을 내렸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의 경제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지금은 시대 변화에 맞춰 한반도가 선택한 길에서 최대한 국익을 도모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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