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신냉전 시대 한국의 선택은

입력 2022-07-13 17:26   수정 2022-07-14 00:11

중세 유럽 최강의 전투집단은 신앙이나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스위스 용병(라이슬로이퍼)은 돈을 위해 싸웠다. 척박한 스위스 땅에서 돈을 받고 전쟁터에 대신 나가는 것은 거의 유일한 밥벌이였다.

이들은 항복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당장은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일자리를 잃게 돼 살길이 막막해진다. 싸우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였다. 신용을 잃으면 자식도 용병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끝까지 싸웠고 기꺼이 죽었다. 물론 이런 군대를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종렬로 긴 창(파이크)을 앞세워 진격하는 스위스 용병은 무적이었다.

그러나 변화가 없다는 게 한계였다. 결국 자신들의 전술을 그대로 모방한 독일 용병(란츠크네흐트)이 등장했다. 스위스 용병은 1512년 이들을 간단히 격파하지만, 10년 뒤 재대전에서는 참패한다. 독일 용병은 스페인 화포 등 신기술을 받아들였지만, 스위스 용병은 그대로였다. 포병의 등장은 개인의 용맹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전쟁이 일깨운 '힘의 논리'
세계화의 시대가 끝나고 신냉전이 시작됐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른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와 공급망 붕괴는 자급자족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지난 2월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힘이 없으면 먹히는’ 정글의 법칙을 환기시켰다.

유엔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5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가진 거부권은 힘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안보리 결정은 유엔 헌장에 의거해 회원국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성을 지닌다. 하지만 상임이사국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안보리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거부권을 규정한 유엔 헌장을 개정할 때도 거부권은 적용된다. 즉 거부권은 영원히 사라질 수 없다.

세계사를 보면 평화나 중립처럼 허무한 말이 없다. 힘이 없으면 힘 있는 쪽에 붙기라도 해야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나선 이유다.
한·미동맹 속 실리 추구해야
새로운 냉전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과거처럼 완전히 한배를 탄 동맹은 아닌 듯하다. 명분이나 의리보다 실리를 따지는 자국 이기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각종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끄떡없는 것은 원유와 가스가 계속 잘 팔려서다. 러시아는 전쟁 발발 이후 화석연료 수출로 930억유로(약 125조원)를 벌어들였는데, 이 중 60%가량을 유럽연합(EU)이 구매했다.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오히려 늘렸다. 텔레그래프는 “EU가 더 강력한 대(對)러 제재를 고려할 때 프랑스는 세계 최대 러시아산 LNG 수입국이 됐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체제 언론인 암살 문제로 거리를 둬왔던 사우디아라비아를 13일 방문한다. 세계 최강대국에도 정의보다 유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 외교의 최근 행보는 빠르고 또 선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으로 우리는 미국 쪽에 선다는 점을 다시 천명했다. 한·미·일 정상이 군사안보협력 재개 원칙론에 합의한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 외교가 막을 내렸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의 경제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지금은 시대 변화에 맞춰 한반도가 선택한 길에서 최대한 국익을 도모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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