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옥죄는 '경제형벌' 손본다…중대재해·공정 3법 원점 재검토

입력 2022-07-13 17:26   수정 2022-07-14 00:57

정부가 기업 활동을 옥죄는 경제 형벌 규정을 행정제재로 전환하거나 형량을 완화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추진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비롯해 중대재해처벌법, 국제노동기구(ILO) 관련법 등이 손질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시도가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진 미지수다.
○경제형벌 원점 재검토
정부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 이노공 법무부 차관 공동 주재로 ‘경제 형벌규정 개선 태스크포스(TF)’ 출범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TF는 방 차관과 이 차관이 공동단장을 맡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환경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공정위원회·금융위원회·식품의약품안전처 등 12개 부처와 민간 법률전문가가 참여한다.

정부는 지난달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경제형벌을 행정제재로 전환하고 형량을 합리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부처별로 소관 법률사항을 전수조사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기업계, 민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경제 형벌규정을 파악했다. TF는 기업활동의 불안·애로를 늘린 법안으로 공정경제 3법과 중대재해처벌법, ILO 관련법 등을 예로 들었다.

TF는 형벌규정 개선의 큰 방향을 ‘비범죄화’와 ‘형량 합리화’로 잡았다. 비범죄화는 국민의 생명·안전, 범죄와 관련 없는 단순한 행정상 의무·명령 위반에 대한 형벌은 삭제하거나 행정제재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경미한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선 징역형, 벌금형 등 형벌 조항을 삭제하거나 과태료 등 행정제재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TF는 서류 작성·비치 의무를 위반한 행위, 폭행 등 불법행위를 수반하지 않고 단순히 행정조사를 거부한 행위 등에 대한 형벌 규정이 비범죄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형벌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보충성(행정제재 먼저, 형벌은 최후수단)과 비례성(위법행위와 처벌 간 균형) 원칙에 따라 형량을 완화하거나 차별화하는 형량 합리화도 추진한다. TF는 예비·음모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거나 감경해 처벌하고, 기업활동과 관련해 사망이나 상해가 있으면 상해는 감형하는 등 형벌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무관한 경우 범죄 경중에 따라 징역형이 아니라 벌금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는 것도 예시로 들었다.
○공정3법·중대재해법 등 거론
정부가 이처럼 경제 형벌규정에 대한 손질에 나선 것은 현재 민간 경제활동 관련 법제 환경이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저해하고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갉아먹을 정도로 가혹하다는 판단에서다. TF는 이날 회의 자료에서 “경제법령상 과도한 형벌조항은 민간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한국의 상대적 투자 매력도를 저하시키는 등 부작용을 초래해왔다”며 “민간 중심 역동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우리 기업들의 자유·창의를 가로막는 범부처 경제 형벌 규정에 대한 일제 점검·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작년 11월 16개 부처 소관 경제법률 301개를 전수 분석한 결과 형사처벌(징역 또는 벌금) 항목이 6568개에 달했다. 이 중 6044개(92.0%)는 법 위반자와 기업을 동시에 처벌할 수 있는 규정으로 징역, 과태료, 과징금 등 여러 처벌·제재 수단을 중복으로 부과할 수 있는 항목도 2376개(36.2%)에 달했다.

정부는 오는 8월까지 부처별 개선안을 마련한 뒤 TF 실무회의를 거쳐 연중 순차적으로 개선안을 상정해 확정할 계획이다. 개선안이 마련된 형벌규정은 관련 법 개정작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전 정부 역점 법안인 공정경제3법,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과반인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민주당이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작아 계획한 만큼 형벌규정을 줄이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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