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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일 베를린장벽 터엔 1만 송이로 장식된 거대한 꽃무덤이 생겼다. 그 안엔 대리석판 100개와 황금으로 새겨진 묘비명이 빼곡했다. 묘비엔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았다’ ‘나는 소비광이었다’ ‘나는 인터넷에 증오를 퍼뜨렸다’ ‘실패가 나를 만들었다’ ‘그녀에게 키스를 했어야 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는 왜 (안) 살았는가(Why did(n’t) I live?)’를 주제로 기획된 이 전시는 SNS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오직 묘지에서만 길어 올릴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삶의 단면과 짧은 유머 사이에서 보는 이들은 자신의 일상과 존재에 대해 사유했다.
작품의 주인공은 서른 살의 독일 현대미술가 팀 벤겔(사진). 공공미술부터 황금과 모래로 만들어낸 대도시 풍경, 조각 작품 등 경계 없는 예술을 펼치는 그는 SNS 팔로어 수만 80만 명, 유튜브 조회수 4억 회에 이르는 ‘스타 작가’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는 “나에게 예술이란 ‘남과 다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를린에 전시됐던 공공미술 작품과 영상 작품, 황금과 모래로 만든 추상 작품 등 27점은 오는 8월 28일까지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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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겔의 작품은 혁신적이다. 재료가 그렇고, 장소가 그렇다. 작품에 담긴 생각은 더 그렇다. 베를린장벽에 대리석 묘비를 만들 땐 15명의 팀과 한밤중에 특수작전을 하듯 작품을 설치했다.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 만들어가는 과정 등은 대부분 영상으로 제작된다. 여러 경로로 바이럴되면서 그의 작품에는 원제와 다른 새로운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이 작품 역시 ‘꽃해골묘지(Flower Skull Cementery)’ ‘우리 세대의 무덤(Graves Our Generation)’이라 불렸다. ‘만든 사람’이 아니라 ‘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작품을 만드는 건 작가이지만, 그 작품의 주인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증명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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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겔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우연히 엄마와 미술관에 갔다가 칸딘스키와 사이 톰블리의 작품 등 추상에 매료됐다. 피카소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예술가를 직업으로 택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대학 땐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고, 첫 직업은 헬스케어 업종의 영업사원이었다. ‘예술가는 배고프다’는 말이 두려워 예술에 대한 꿈을 미루다가 2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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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 중엔 ‘황금 아보카도’가 있다. 지난해 12월 마이애미 아트바젤의 아트위크에 그는 300만달러(약 37억원)의 황금 아보카도 베이글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호박씨가 올라간 베이글 안의 토마토, 아보카도, 각종 채소 등 27개의 부품이 모두 18K 금 1452돈으로 만들어졌다. 벤겔은 밀레니얼 세대가 아보카도에 열광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아보카도는 밀레니얼 세대의 상징 중 하나니까요.”
아보카도 소비는 부와 지위, 몸매 가꾸기 코드와 맞물려 유럽 일본 러시아로 확산하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에 숨겨진 ‘핏빛 아보카도’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다는 점이 그를 유혹했다. 이 작품을 통해 아보카도를 유행처럼 대량 소비하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풍자했다. 실제 아보카도 수요가 폭증하며 중남미 지역의 물 부족과 환경파괴 문제는 심각하다. 멕시코 카르텔과 얽혀 ‘부패의 맛’으로도 표현된다. 유리관 속에 진열된 황금 아보카도는 전시 기간 내내 경찰이 지키고 서 있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현대미술에서 금은 상징적인 소재였다. 앤디 워홀은 숭배의 대상이 된 대중들의 아이콘 배경을 금으로 칠했고(금빛 마릴린 먼로, 1962), 마크 퀸은 금으로 제작한 기괴한 신체 조각으로 여성에게 강요된 비현실적 이미지를 비판(사이렌, 2008)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황금변기(아메리카, 2011)도 미국의 자본주의와 아메리칸 드림을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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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겔이 금을 가져오는 방식은 다르다. 단순히 풍자와 비판의 상징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진 본연의 순수한 열망을 나타내는 도구로 등장한다. 히말라야 산에서 채집한 돌을 갈아 만든 모래, 그 위에 황금박을 붙여 만든 뉴욕의 모습은 웅장한 스케일로 사람들을 압도하기도 했다. ‘나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 작품은 가로 405㎝, 세로 247.5㎝에 달한다. 캔버스 위에 돌가루와 황금으로 미세한 작업을 끝낸 뒤 캔버스를 일으켜 세우면 해질녘 도시의 어둠과 그 사이에서 빛나는 초고층 빌딩의 야경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는 양배추의 단면이 황금과 흑백으로 조화를 이룬 추상 작품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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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품 제작 과정을 대부분 동영상으로 남겨 유튜브와 SNS에 공유한다. 짧은 시간 내에 그가 세계적 갤러리와 브랜드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된 이유다. 작품 제작 영상이 쌓이면서 그에겐 애플과 포르쉐 등 글로벌 브랜드의 광고 제안과 유럽 각 왕실로부터의 작품 구매 요청 등이 쏟아진다. 뉴욕 HG컨템포러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것도 SNS를 통해서였다.
“세계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소셜미디어의 개방성으로 견고한 미술계의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독립적으로 예술가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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