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1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한·미 양국이 필요시 유동성 공급장치 등 다양한 외환시장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 양국 간 통화스와프 체결 논의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추 부총리는 이날 방한한 옐런 장관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회의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 통화스와프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한·미 양국은 외환시장에 관해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고, 외환 이슈에 대해 선제적으로 적절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며 논의 결과를 밝혔다. 추 부총리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 도입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옐런 장관에게 전달했다. 그러면서 “가격상한제가 국제 유가 및 소비자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한국의 동참 의사에 사의를 밝히며 “향후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한국도 적극 참여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옐런 장관의 예방을 받고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다양한 방식의 실질적 협력 방안을 한·미 당국 간 깊이 있게 논의해달라”며 “이를 통해 한·미 안보 동맹이 정치·군사 안보와 산업·기술 안보를 넘어 경제·금융 안보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옐런 장관은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공급망의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에 한국이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번 발언은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외환시장과 관련한 긴밀한 협의’를 하기로 합의한 연장선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복합적인 다양한 위기가 전 세계로 엄습하는 가운데 한·미 간에 이런 포괄적 전략 동맹이 정치·군사 안보에서, 또 산업·기술 안보에서 나아가 경제·금융 안보 동맹으로서 더욱 튼튼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옐런 장관은 “미국은 한국을 상당히 오래된 우방과 친구로 생각한다”며 “한국의 번영한 민주주의와 번창한 경제, 한·미 간 긴밀한 우정과 공유된 가치에 대해서도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며 한·미 동맹을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이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만나 양국 간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옐런 장관은 이날 오전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내 LG화학 연구개발(R&D)센터를 찾아 “동맹국 간 프렌드 쇼어링을 도입하고 더 굳건한 경제 성장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며 “공급망을 더 강화하기 위해 주요 우방과의 경제 협력을 굳건히 해야 하며, 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된다”고 역설했다.
옐런 장관이 LG화학을 방문한 것은 5월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을 때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첨단 전략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한·미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란 것이다. LG화학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계획하는 북미 지역 내 투자액은 110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은 미국 현지에 양극재 공장 신설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옐런 장관은 그가 제안한 개념인 프렌드 쇼어링이 반중(反中) 전선을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의도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독재 정치를 하는 국가들은 경제에 큰 타격과 압력을 주고 있다”며 “중국은 특정 재료와 물질의 제조 환경에서 지배적 힘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를 달성하고자 불합리한 시장 질서를 도입하고 있다”고 중국을 직접 겨냥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옐런 장관에게 “LG화학은 전지에 들어가는 재료를 종합적으로 만드는 회사”라며 “소재 공급망 측면에서 북미 지역의 여러 리튬 회사와도 협력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옐런 장관은 ‘전기차 배터리 충전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배터리 셀 안에 양극재나 리튬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 소재에 관심을 보였다고 LG화학 측은 전했다.
옐런 장관은 지난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후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미국 재무장관의 방한은 2016년 6월 이후 6년 만이다.
▶프렌드 쇼어링 friend-shoring
미국을 중심으로 우방국끼리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움직임. 미·중 갈등,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조미현/강진규/좌동욱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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