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근로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징계 규정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이 가능할까. 특히 없었던 징계 규정을 새로 만드는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 변경된 규정에 따른 징계는 원칙적으로 어렵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적'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근로자 A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강등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중노위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A는 팀원들에게 "짬이 얼만데 이거밖에 못 해" "알바를 데려와도 이보단 잘하겠다" "초등학생이냐?" 등의 발언을 하거나 물티슈를 던지기도 했다. 또 여성 팀원에게 "얼굴만 빼면 내 스타일이야" 등의 말을 했고, 귓속말하거나 어깨를 주무르거나 어깨동무하고 여직원 어깨에 턱을 얹는 등의 신체 접촉 행위도 빈번하게 저질렀다.
그 외에도 상급자의 결재 없이 즉흥적으로 전보 조치하거나 전보된 근로자를 복귀시켰고, 업무상 지적을 하면서 외부로 내보내겠다고 언급하는 등 팀장의 권한을 부적절하게 행사했다.
회사는 2018년 개정된 징계 규정(취업규칙)에 따라 A에게 '강등'의 징계를 내렸다. 강등 처분은 규정을 개정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징계였다.
징계 사유가 명확해 보였지만 A는 해당 징계 규정 자체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으로 무효"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다. A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회사는 그런 절차 없이 인사 규정에 '강등'을 추가하는 등 불리한 개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잇따라 진 A는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A가 주장하는 '불이익 변경'이란 사용자가 이전 취업규칙 등을 개정하거나 새 규정을 만들어 근로조건을 저하하거나 복무규율을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법은 이를 금지하고 있으며,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회사는 근로자 과반수나 근로자 과반수로 이뤄진 노조의 동의(집단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실제로 이 회사는 인사 규정에 '강등'을 추가하고, 감봉의 경우 개정 전에는 '월급 총 5% 삭감'에서 개정 후 '1/3' 삭감으로 변경했다. 또 성희롱 처벌 규정을 정비하고 징계 기준을 크게 강화했다. A가 이 점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불이익 변경'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 성과급 삭감 등에도 쟁점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취업규칙은 △임금 등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을 규정하는데, 이 중 복무규율은 근로조건과 달리 사용자에게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이라며 "(징계 등 복무규율 변경은) 근로자의 의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지 않은 한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징계규정 개정이 △과도한 징게를 방지하기 위해 강등 규정을 도입한 점 △개정이 지방공무원 법령을 참고한 점 △회사 자체가 지자체 출연기관이라 일반 기업에 비해 직원의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점 △다른 직원들이 개정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는 점을 근거로 해당 규정 개정이 비록 불이익 변경이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징계 기준을 강화해도 이는 징계권자를 구속할 뿐, 그 자체가 곧바로 징계의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자체는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라고도 봤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해 주는 경우는 드물다. 이 사건은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 분석 결과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한 사례가 8건(부정한 사례는 60건)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전문가는 "취업규칙을 사용자가 임의로 바꿀 경우 사후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이유로 각종 징계 무효 소송이나 임금 소송이 제기되는 등 불필요한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인사 실무 담당자들은 규정 개정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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